[2002대기업 리더들⑫]조양호회장 그룹 실질적 대표

  • 입력 2002년 3월 27일 18시 31분


한진그룹은 최근 ‘소그룹 체제’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조양호(趙亮鎬·53) 대한항공 회장을 ‘그룹의 실질적인 대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변화는 사소해 보이지만 가만히 곱씹어보면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진 창업주인 조중훈(趙重勳·82) 회장은 아직 명예회장이 아닌 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소그룹이나 실질적인 대표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조중훈 회장의 ‘양해’ 아래 경영권 이양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소그룹 체제란 항공부문은 장남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중공업부문은 차남인 조남호(趙南鎬·51) 한진중공업 부회장, 해운부문은 3남인 조수호(趙秀鎬·48) 한진해운 부회장, 금융부문은 4남인 조정호(趙正鎬·44) 메리츠증권 부회장이 맡는 구도를 말한다.

형제별로 독립된 책임경영을 하지만 그룹의 공동사는 조양호 회장이 총괄한다. 형제간 불협화음이 나온 적도 없다.

효자로 소문난 조양호 회장에 대한 부친 조중훈 회장의 신임과 애정은 각별하다. 조중훈 회장이 쓴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을 보면 한진그룹의 전현직 임직원 가운데 유일하게 조양호 회장의 이름만 두 번 등장한다.

그 중 한 토막. “나는 경복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양호를 미국에 유학시키기 위해 함께 데리고 갔다. 어릴 때부터 국제감각을 기른다는 의미에서였다. 여비를 아끼기 위해서 사업상 전세를 냈던 화물기를 이용했던 기억이 새롭다.”

조양호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 영업 전산 자재 인사 총무 등 각 분야를 두루 거쳤다. 정석학원 이사장, 인하학원 이사장, 정석기업 부회장, 한진정보통신 회장 등도 맡고 있다.

조남호 부회장은 4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왔지만 해외근무경험은 가장 풍부하다. 부친에게도 필요하면 바른 말을 하고 부하직원을 포용하는 스타일.

94년 한진해운 사장이 된 조수호 부회장은 96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빠른 5300TEU급 컨테이너선을 취항시키는 등 공격적 경영을 해왔다. 조 부회장이 ‘키를 잡은’ 한진해운은 96년 한국 해운사상 최초로 연간 매출 2조원을 넘어섰다. 국제무대에서 발이 넓어 한국이 국제해사기구(IMO) 이사국으로 선출되는 데 기여했다. 그림 그리기가 취미이며 미술품에 대한 안목도 높다.

조정호 부회장은 미국에서 고교와 대학을, 스위스에서 대학원을 졸업해 영어와 불어가 유창하다. 한진투자증권(지금의 메리츠증권)과 한불종합금융을 92년 잇따라 공개시켰고, 그 후 3년 만에 투자증권을 업계 중위권으로 발돋움시키는 경영수완을 보여줬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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