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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0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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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경영실적이 호조를 보였거나 정책의 ‘약발’이 먹혀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 있는 반면 경영악화나 무리한 정책 강행으로 명성에 흠집을 남긴 인사도 적지 않았다. 2001년 대한민국 경제계에서는 누가 뜨고 누가 졌나.
▽뜬 인물〓재계에서 올 한해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인물로는 현대가(家)의 적통(嫡統)을 되찾는 데 성공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꼽힌다.
지난해 동생인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과 재산상속 분쟁을 벌였던 정 회장은 올해 현대차그룹을 이끌고 ‘분가경영’에 나서 1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거뒀다. 현대차그룹은 4월 대규모 기업집단에 공식 편입된 뒤 재계 서열이 4위로 뛰어올라 현대가의 중심축 자리를 굳혔다.
전문경영인 중에는 LG전자 중국지주회사의 노용악 부회장과 LG카드 이헌출 사장이 각광을 받았다. LG의 중국관련 사업을 지휘하는 노 부회장은 중국시장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위상을 높였고 LG카드를 신용카드 업계 1위로 끌어올린 이 사장은 그룹 내에서 ‘CEO 모범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는 삼성그룹에 연착륙해 ‘3세 후계체제’의 첫발을 내디뎠다. 전문경영인들로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이 상무보의 행보는 삼성의 향후 진로 및 수뇌부 포진 구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두산중공업 회장)은 회사경영이 순조로운 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내정되는 경사까지 맞아 흐뭇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김정태 국민, 하영구 한미은행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민-주택은행의 통합행장으로 선출된 김 행장은 합병은행 출범 후 주가가 2배나 올라 ‘김정태 주가’라는 평가도 받았다. 국내 첫 40대 은행장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은 하 행장은 동년배의 40대 임원들과 함께 ‘작지만 강한 은행’을 만들기 위해 경영혁신에 나서고 있다.
정부 경제팀의 ‘수장(首長)’인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올해 초 부활된 ‘경제부총리’가 된 데 이어 경기가 조금씩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장수 장관’ 반열에 들어섰다.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올 10월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 등과 함께 미국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15인’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진 인물〓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별세는 한국 재계 1세대의 퇴장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 한때 후계자로 지목됐던 정몽헌 회장은 자금난으로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등 주력 계열사에서 손을 뗀 데 이어 금강산관광사업까지 순탄치 않아 의기소침해 있다.
코스닥 거품이 꺼지면서 잘 나가던 몇몇 벤처기업인이 무대 전면에서 퇴장했고 벤처캐피털업계의 실력자들도 ‘자의반 타의반’ 수난을 겪었다.
벤처기업 원조로 꼽히는 메디슨의 이민화 회장은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고 주가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자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벤처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새롬기술 오상수 회장, 홍윤선 네띠앙 사장, 전하진 한글과컴퓨터 사장 등 유명 경영인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퇴진했다.
벤처기업을 줄줄이 코스닥에 등록시켜 한때 벤처캐피털의 대부로 불렸던 한국기술투자(KTIC) 서갑수 전 회장은 수감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국세청장 재직시절 언론사 세무조사를 주도한 안정남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장관 취임 한달도 안돼 부동산투기의혹과 동생의 사업특혜의혹 등이 겹쳐 불명예 퇴진했다. 취임 초부터 재산과 관련해 구설수에 올랐던 오장섭 전 건교부 장관도 항공안전 2등급 판정의 책임을 지고 경질돼 건교부장관 수난사에 한 줄을 더 올렸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 규제를 고수하는 과정에서 재계로부터 ‘정부 규제의 화신’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박원재·박중현·김두영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