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업종전문화만이 살길인가…FT紙-삼성硏 명암 지적

  • 입력 2001년 10월 24일 19시 01분



《반도체 경기의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3·4분기(7∼9월)에 가까스로 흑자를 낸 삼성전자 경영진은 요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꾸민 효과를 톡톡히 봤다”며 안도하고 있다. 반도체에서 낸 3600억원의 영업손실을 정보통신과 가전 부문의 이익으로 메웠기 때문. 반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 “한국 재벌들이 중국의 추격을 극복하고 살아남으려면 핵심업종 전문화를 통해 기술우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는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업종전문화시책을 추진해온 한국 정부의 정책기조와 일맥상통하는 지적. 언뜻 보면 사업다각화를 통한 삼성전자의 흑자경영 사례는 ‘업종 전문화가 경쟁력 강화의 요체’라는 통념과 어긋나는 듯하다. 업종전문화는 한국 기업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과제인가.》

▽업종 전문화의 강점〓FT는 “지난 40년간 한국 재벌이 업종전문화보다는 일반 관리기술과 팽창욕구,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성장했으며 여전히 서구기업에 비해 훨씬 더 다각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거대기업 가운데 업종전문화로 성공한 사례는 많다. 예컨대 콜라업계 부동의 선두인 코카콜라는 음료 외의 업종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한 우물’만 파고 있다. 라이벌인 펩시콜라가 패스트푸드와 레스토랑업종 등에 적극 진출했던 것과 대조적.

▽삼성전자의 흑자 비결〓삼성전자는 반도체, 정보통신, 디지털미디어, 생활가전 등 4개 부문의 매출이 대략 ‘3 대 3 대 3 대 1’의 비율로 이뤄져 있다. 회사측은 “세계 어느 반도체 메이저도 갖지 못한 황금분할 사업구조”라고 자평한다.

삼성전자가 정부의 업종전문화 시책에도 아랑곳 않고 이 구조를 고수한 것은 90년대 초중반 반도체 불황을 겪으면서 업종 다각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당시 반도체 부문의 수익이 급격히 악화됐을 때 가전과 정보통신의 선전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99∼2000년의 반도체 호황으로 각각 3조원과 6조원의 흑자를 냈을 때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정보통신과 디지털 분야의 투자재원으로 돌렸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인 미국의 GE사가 의료기기 가전 항공기엔진 등 연관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보유하고도 잘 나가는 것도 업종 전문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인철 수석연구원은 “업종전문화 정책의 참뜻이 비관련 부문으로 무분별하게 확장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긴 하지만 삼성전자가 업종 다변화로 불황 충격을 흡수한 사례는 재벌개혁의 방법론과 관련해 되새겨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생존 발전은 기업개혁이라는 명분보다는 시장 및 기술변화에 대응하는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원재·정미경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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