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이닉스 어디로 가나

  • 입력 2001년 8월 28일 18시 26분


3조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포함한 자금지원이 추진되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채권은행장들은 31일 총 6조7000억원의 채무조정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부 은행들은 이에 반대 입장을 밝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살로먼스미스바니(SSB)와 외환은행이 만든 2차 채무조정으로는 하이닉스의 장기생존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하이닉스에 대한 채권액이 비교적 적다는 한 시중은행의 행장은 “1차 채무조정안이 만들어진 후 반도체가격이 크게 떨어졌으나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투신권이 회사채 만기연장을 거부하고 있고 미국 상무부도 한국정부에 ‘하이닉스 지원불가’ 압력을 강하게 넣고 있어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해외채권단은 4600만달러 조기상환과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겠다며 협박하고 있어 채권단 내부에서조차 ‘법정관리 불가피론’이 나오고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하이닉스 미국현지법인(HSA)에 지급보증을 선 현대상선과 현대중공업이 무려 11억4800만달러(1조4467억원)의 부채를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시중은행도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3조원 출자전환으로는 모자란다〓SSB는 추가로 지원해도 연말에는 현금이 1040억원밖에 남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반도체가격이 조금만 더 떨어져도 유동성위기를 겪게 된다. 또한 산업특성상 엄청난 시설투자가 필요한데 하이닉스의 올 하반기와 내년도 시설투자액은 1조2000억원에 불과해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유동성위기를 다시 겪게 되면 1조2000억원마저 투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의 지원방안은 하이닉스의 회생을 적극 돕는다기보다는 수명을 연장하는 데 초점을 둔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자국의 반도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정부의 압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해 과거처럼 산업은행을 동원할 여지마저 사라졌다.

▽채권단 동의 얻을 수 있을까〓한 시중은행의 행장은 “하이닉스는 이미 5월 채무조정 때 발을 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2차 채무조정에 참가할지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은행과 SSB는 해외DR 12억5000만달러 발행을 근거로 모든 시중은행을 채무조정에 끌어들여 엄청난 손실을 안겨줬기 때문에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SSB는 당시 64D램 환산가격 2.65달러를 가정했으나 해외DR 발행에 나갈 때 이미 반도체가격이 1달러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를 반영하지 않아 채권단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일부 은행이 회생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추가지원에 반대할 가능성도 적지 없다. 더군다나 회사채 1조2000억원 만기를 3년간 연장하고 금리도 절반 수준으로 깎아줘야 하는데 투신사들은 절대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법원의 대우채 판결 이후 투신사들은 서울보증보험과 오리온전기의 자산을 가압류하는 등 초강경으로 나오고 있어 이번 손실분담에 동참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법정관리 가능성 대두〓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채권단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9월14일부터 발효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적용한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이 법안은 1차 채권단회의일로부터 최대 3개월 이내에 75% 이상의 채권자가 채무조정안에 동의하든지, 그렇지 못하면 곧바로 법정관리 또는 청산절차를 밟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투신사와 리스사가 반대하면 현실적으로 75% 이상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외환은행도 하이닉스 지원안이 부결되거나 반도체가격이 추가로 하락할 경우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채권단에 제시했다.

<김두영·이나연기자>nirvana1@donga.com

▼하이닉스주가 장중 1000원대 붕괴▼

28일 하이닉스반도체의 주가가 장중에 900원대로 떨어져 1000원선이 위협받고 있다.

전날 하한가까지 추락해 사상 최저가인 1070원으로 장을 마감한 하이닉스는 이날도 개장초부터 매도물량이 쏟아져 1045원으로 장을 시작했다. 오전 한때 900원 대로 떨어지기도 했으나 오후 들어 오름세로 반전해 1095원으로 마감했다.

한편 한국기업평가는 하이닉스의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신용등급을 BB+에서 B로 무려 4단계나 낮췄다. 한기평은 하이닉스가 6월 해외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했지만 유동성 부족으로 채무상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져 신용등급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도 하이닉스반도체의 신용상황 악화를 이유로 미국현지법인(HSA)의 선순위 보증채 등급을 ‘Caa1’으로 내렸고 추가하향조정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진기자>lee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