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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13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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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 참여자들은 “한국식 접대문화, 전문가를 대우하지 않는 관행, 견제장치가 없는 채권거래 시스템 등이 한데 묶여 생겨난 사건”이라고 풀이했다.
▽일그러진 접대 문화〓“10월 초 중소규모 증권사에서 ‘영업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줄테니 옮겨오라’는 제의를 받았다. 연봉이 3배정도 뛰겠지만 사흘간 고민하다가 포기했다.”(A증권 채권담당 B씨)
‘고액 연봉은 곧 실력’으로 평가되는 채권시장에서 브로커가 고액연봉을 포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B씨는 “월급쟁이인데도 펀드매니저들이 접대를 공공연히 요구하고 있는데 성과급 직원이 된다면 노골적으로 접대를 요구할 것이므로 체력적으로 견딜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LG증권의 한 직원은 최근 영업을 위해 시중은행을 방문했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채권영업 노하우가 있는 우리와 거래를 터보자”고 권했더니 “거래해서 ‘더 생길 것’이 없다”고 되받더라는 것이다.
한국투신운용은 이같은 사정을 감안해 조영제사장이 취임한 8월 “투신사 직원이 1년간 증권사로부터 접대받을 수 있는 한도는 10만원”으로 선언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펀드매니저와 브로커의 유착은 곧 고객손실’이란 측면에서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뜻에서였다.
실제로 입소문으로 돌던 이같은 이야기가 검찰수사로 확인되기도 했다. 작년엔 세종증권 회장이 외환위기 직후 국내 3대 투신사 채권부장에게 1억원씩 준 사실, 올해는 세종하이테크 대표가 자사주가 조작을 위해 주식 펀드매니저에게 돈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제도적 오류〓D증권 채권담당자는 “은행 등의 펀드매니저가 책임과 권한은 막중하면서도 몸값은 ‘입사동기’와 같다면 비리발생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수조원대의 자산을 굴리는 사람은 그에 맞도록 별정직, 성과급 등 방식으로 별도관리해야 한다는 것.
채권 펀드매니저 한사람에게 분석, 결정, 집행 등 모든 권한이 주어져 내부통제 기능이 약한 것도 문제다. 채권시장의 경우 거시경제지표를 살피는 이코노미스트, 주식 채권 예금 등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는 펀드매니저, 실제 하루하루 이자율 변동을 좇아 거래하는 트레이더의 일을 사실상 한 사람이 하다보니 내부견제장치가 없는 실정이며, 그만큼 주위의 유혹에 넘어갈 소지도 크다.
<이진·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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