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재열교수 "관 주도 재벌개혁으론 안돼"

  • 입력 2000년 11월 6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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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 부실기업 발표로 나라가 들썩이는 가운데 재벌개혁의 방향과 의미를 평가한 세미나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4일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소장 양 춘)가 주최한 ‘한국사회의 재구조화’ 심포지엄에서 서울대 이재열 교수(사회학)는 “주요 변화가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경제를 다루는 현 정부의 방식도 과거 개발연대의 방식과 큰 차이가 없어 재벌개혁으로 인한 변화가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교수는 사외이사 확대, 소액주주 권한 확대,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등 재벌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회복하는 일련의 조치를 ‘가부장제에서 관료제로의 이행’으로 분석했다. 제도화된 규칙 없이 보스와 조직원간의 충성과 보호의 교환으로 이뤄지는 마피아적 조직에서 문서화된 규칙에 의거한 조직구조로의 변화를 뜻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그룹 기획조정실 폐쇄 등 재벌의 수직적인 통제구조를 해체하고, 은행들이 추가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기업의 구조개혁을 이끌어내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음을 인정하면서도 개혁의 근본적인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례로 다양한 2차 금융기관을 소유한 재벌들이 여기서 조성된 자금을 사(私)금고처럼 활용하고 있으며, 재벌 총수의 지분은 낮아졌지만 계열사 지분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순환출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개혁의 정치마저 ‘한강의 기적’을 ‘한강의 신기루’로 만든 관 주도의 제도적 문화적 토양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런 점이 재벌개혁이 가까운 시일내 한국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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