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잇단 윤리경영 선표 '변신바람'

  • 입력 2000년 10월 29일 18시 24분


“저도 엄연한 직장인인데 주변에서 ‘아줌마’라고 부를 때는 속 상해요. 신세계 계열의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는 이름 또는 ‘여사님’이라 불러줍니다. 그래서 판촉사원들 사이에서는 신세계 매장에서 일하는 걸 반기고 경쟁도 치열하죠.”

이마트 일산점에서 일하는 동산C&G 판촉사원 이봉주씨(36·여)는 “협력업체 직원이 유통업체에 파견되면 움츠러들게 마련인데 호칭만으로도 대등한 관계가 된 것 같아 신바람이 난다”고 말했다.

이씨가 지난해 5월 처음 배치됐을 때만 해도 ‘아줌마’ ‘언니’로 주로 불렸다. 소속업체 이름을 따서 ‘거기, 동산아줌마’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신세계가 기업윤리강령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협력업체존중 경영을 표방하면서 ‘이봉주씨’ 또는 ‘이여사님’으로 바뀌었다.

▽신세계의 윤리경영 실험〓신세계는 윤리경영을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생활규범으로 정착시키자는 취지에서 ‘기업윤리실천 사무국’을 만들었다. 기업소개 사이트(www.shinsegae.co.kr)안에 ‘윤리경영 홈페이지’도 개설했다.

협력업체들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극히 일부이긴 했지만 유통업계의 고질로 지적돼온 구매부정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다.

부정사례가 접수되면 회사측은 내용을 확인해 그 결과를 사이트에 게시했다. 직원들에게 상품권이나 금품을 주려던 협력업체에는 신세계 대표이사 명의로 엄중한 경고장을 보냈다. 지금까지 10여개 협력업체가 원산지 표시와 제품 품질 등을 속이다가 거래중단 통보를 받았다.

자연히 납품절차가 투명해졌다. 신세계측은 세전 이익이 지난해 200억원대에서 올들어 지금까지 1000억원대로 늘어나게 된 데는 윤리경영이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벤처기업도 윤리경영 선언 〓호텔파업 등으로 홍역을 치른 롯데그룹이 최근 윤리강령 선포식을 가진데 이어 벤처 기업인들도 윤리경영에 적극 동참할 뜻을 밝혔다. 벤처기업협회 등 3개 벤처단체는 29일 성명을 내고 “정현준씨 사건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벤처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안타깝다”며 “벤처기업의 경영진과 대주주가 자성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이민화 메디슨회장은 “일부의 탈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벤처인들은 현장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다”며 “30일 오전에 뜻을 같이하는 벤처기업인들이 모여 윤리경영을 선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리경영은 세계적인 흐름〓지난해 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뇌물방지협약이 발효됐다. 선진국들은 부패에 연루된 기업총수와 법인에 대해 입찰 자체를 금지하는 등 제제를 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제 윤리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원재·박중현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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