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호황에 대기업 "울고 싶어라"

  • 입력 2000년 2월 20일 20시 02분


그칠줄 모르는 코스닥시장의 호황이 국내 대기업들에게 ‘2중고’(二重苦)를 안겨주고 있다. 투자자금이 코스닥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주가가 떨어지고 유능한 인재들도 벤처기업을 향해 썰물처럼 회사를 떠나고 있는 것.

최근 코스닥시장의 재도약에 불을 당긴 것은 외국인투자자들. 외국인은 지난달 17일부터 14일까지 20일간 코스닥시장에서 8894억원을 순매수했다. 거래소 종목의 편입비중을 줄이는 대신 코스닥종목을 채워넣은 것. 기관투자가가 그 뒤를 따랐다.

▽대기업 직격탄 맞아〓코스닥시장에서 순매수를 시작한 지난달 17일 이후 한달간 외국인은 SK그룹의 종목들에서 912억원을 빼갔다. 이어 △LG그룹 769억원 △삼성그룹 639억원 △제일제당그룹 623억원 △현대그룹 251억원을 매도했다.

종목별로는 SK텔레콤 주식을 889억원어치 판 것을 비롯해 △LG전자 637억원 △제일제당 623억원 △삼성물산 266억원 △삼성SDI 253억원 △한솔제지 170억원 등으로 거래소시장의 대표적인 우량종목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에서는 외국인들이 코스닥의 상승을 주도하는 인터넷 정보통신 관련종목들을 매수하는 대신 거래소시장에서 수익률이 낮은 대체재 성격의 종목들을 내다파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ING베어링증권 서울지점의 빌 헌세이커이사는 “최근 외국인의 관심은 10∼30%대의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거래소의 대기업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는 코스닥 종목들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대기업들이 보여온 ‘주주 경시’행태도 한 원인. 빌 헌세이커이사는 “한국 벤처기업에 대한 신뢰는 대기업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재벌들은 과거의 잘못된 행태로 외국인의 믿음을 잃은 반면 벤처기업들은 그같은 ‘전과’가 없다는 것.

▽‘엑소더스’ 줄이어〓무료 국제전화사업을 벌이는 새롬기술은 최근 삼성증권과 제일기획 현대정보기술 출신의 직원 7명을 채용했다. 삼성증권 이남우상무는 “벤처기업과 인력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최근 경력사원 26명을 뽑은 코스닥증권시장에는 삼성전자에서 1조원대의 자금을 관리하던 직원이 응시해 합격했다. 코스닥증권 관계자는 “회사의 성장성을 보고 대기업 출신의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기회의 땅’을 찾아 대기업을 떠나는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박현주사장은 “앞으로 스톡옵션과 우리 사주 등을 통해 직원들이 일한만큼 성과를 받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크게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은 대부분 유학이나 공부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며 “정확한 이직 현황은 남은 직원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어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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