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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1월 18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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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자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올해 초 만난 ‘구세주’가 기업은행의 ‘기업간 협력대출’. 대기업의 발주서와 자금지원 추천서만을 믿고 중소기업에 대출해주는 신종대출이다.
A사의 발주처는 삼성SDS. 삼성SDS 구매팀과 재무팀이 각각 A사 제품과 재무상황을 세밀하게 검토한 끝에 자금지원 추천서를 썼다. 이 추천서가 기업은행 본점을 거쳐 평촌지점에 전달된 것은 불과 3일 뒤. 금리도 무담보 대출로는 파격적인 연11%대였다.
A사는 두차례에 걸쳐 4억원을 대출받고 최근 삼성측으로부터 납품대금을 받아 전액 상환했다. A사와 거래했던 평촌지점의 이경렬 지점장은 “우리는 대출금을 제대로 사용하는지만 감독했다”며 “오히려 대출위험이 적은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현대건설의 금강산개발 및 경수로건설 사업에 협력업체로 참여하고 있는 삼진건철. 온정리 일대 현대의 사무실 숙소 샤워장 화장실 등을 만드는 매출 100억원대의 중견 건설업체다. 하지만 만성적인 자금압박을 받기는 다른 업체와 마찬가지.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엔 C, S, H은행 등에 가지고 있는 자산을 모두 담보로 잡혀 더이상 은행돈을 빌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올 1월 현대건설의 발주서만으로 기업은행으로부터 ‘위탁대출’을 받은 뒤 사정이 달라졌다. 현재까지 받은 무담보대출금은 8억원. 현대의 ‘이름값’과 은행 창구의 과감한 위험 감수가 겹쳐 최악의 건설불황을 무난히 극복한 셈이다.
최병용 삼진건철 사장은 “무담보대출이 가능하다고 할 때 처음엔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기업은행과 ‘기업간 대출’ 협약을 맺은 업체는 현대건설과 삼성SDS 등 2개 대기업뿐. 대기업의 추천서와 납품계약서만을 토대로 협력업체에 돈을 빌려주면 대기업은 추후 납품대금을 은행에 바로 입금한다. 대기업은 협력업체 부도시 브랜드 가치가 추락하는 위기를 맞고 은행측은 대출금을 떼이게 된다. 그러나 납품업체로서는 2차 납품대금을 미리 대출받는 일종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다.
기업은행은 이같은 중기대출을 개발한 공로로 18일 국제산업협력재단이 주는 ‘기업협력대상’ (산업자원부장관상)을 받았다. 여신기획팀 노희성차장은 “올해 53개 업체에 141억원을 대출하는 동안 한번도 문제여신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경영진이 마음먹기에 따라선 담보잡는 것보다 오히려 안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라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