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두 시각]“시장에 맡기자” “정부 개입”

  • 입력 1999년 11월 15일 20시 04분


《97년 말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국난(國難)에 준하는 경제위기에 빠져들었던 한국은 2년에 걸친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을 거치며 안정을 되찾고 있다. 현 정부의 요란한 경제적 치적 과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과 재벌해체 드라이브가 과연 자본주의 경제의 원칙에 합당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견도 적지 않다. 과거 문민정부의 각종 개혁조치처럼 국민의 정부의 경제정책도 ‘수술은 성공하고 환자는 죽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잇달아 열리는 두개의 경제관련 학술회의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대립되는 견해를 내놓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학술회의는 연세대 경제연구소와 전경련 한국경제연구원이 공동주최하는 ‘새로운 대기업 패러다임의 모색’(16일 오후1시20분 서울 연세대 상경대 본관)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사회경제학회와 한국사회과학연구소가 공동주최하는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과 21세기 한국경제’(20일 오전9시반 서울 동국대 90주년기념문화관). 두 학술회의는 현재 구조조정의 현황과 문제점을 지적하며 21세기의 바람직한 한국경제 건설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진단과 처방은 보수와 진보로 나눠 볼 수 있는 주최측과 이에 가담하고 있는 경제학자의 면면 만큼이나 판이하다.

▨시장의 자율적 기능

‘새로운 대기업 패러다임 모색’에서는 대체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따라 경제가 운영되도록 개혁을 추진할 것을 주장하는 논문들이 발표된다.

▽유석춘(연세대 사회학과)·장상철(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정부는 한국경제가 60년대 이후 정부가 직접적으로 경제개발의 중심적이고 주도적인 행위자였던 ‘개발국가’로부터 80년대 이후 시장에서의 규칙을 정하고 이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규제국가’로 옮겨간다고 한다. 실제로는 아직 개발국가로 남아 있다.한국에 있어서 개발국가의 힘의 근원이 금융자원에 대한 통제권에 있었다고 본다면 변화의 근거도 이 지점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신광식(한국개발연구원)〓한국에는 정부가 시장을 선도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반경쟁적 반시장적 관념이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이 산업정책적 개입과 규제를 통해 고속성장을 해왔다는 피상적 인식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경쟁적 시장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 마련에 중대한 장애가 되고 있다. 경제력 집중과 대기업 집단의 문제는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아니라 시장의 효율적 작동을 뒷받침하는 법제의 확립과 경쟁압력 제고를 통한 ‘시장의 힘’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과 정책은 시장구조와 형태를 실질적으로 경쟁화함으로써 경제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최도성(서울대 경영대)〓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는 외국의 원칙, OECD의 가이드라인 등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여건을 감안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기업지배 과정의 참여자인 채권금융기관, 투자분석가, M&A시장 등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여건을 고려하여 기업지배구조의 모범규준을 만들어야 한다. 이 때 특히 고려해야 할 것은 기업지배 모범규준의 지향점이 소액주주를 포함하는 모든 주주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은 별도로 추진되고 있는 만큼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재벌개혁에 그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기업에 지침이 될 수 있는 규준의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

▨공정한 고통분담과 분배

‘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과 21세기 한국경제’에서는 지난 2년간의 경제변화를 돌아보며 구조조정의 효율성과 그 성과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방안이 논의된다.

▽조복현(대전산업대 경제학과)〓자유화된 금융활동에 따른 자본시장의 투기적 성격 때문에 금융규제의 완화와 금융건전성 감독 등의 금융개혁, 그리고 자본시장의 활성화는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개선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저해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금흐름에 대한 통제가 시장이나 국가가 아닌 국민적 합의기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자본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에 대한 조세부과나 적대적 인수 합병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며 △최근 국제화하는 자본이동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김상조(한성대 경상학부)〓현상황에서 위기관리와 구조개혁을 위한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위기관리와 구조개혁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갈등관계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부의 개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국민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부실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구조조정 비용을 공적 자금이라는 형태로 사회화했다면, 그 구조조정의 성과 역시 사회화돼야 한다. 건전한 기업소유 지배구조의 창출은 노동자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정확이 일치하는 부분이다.

▽송홍선(한국사회과학연구소)〓기업금융구조 변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은행계약의 경우 채권자의 이익을 위한 관치금융 해소와 기업소유구조 개혁, 시장계약의 경우 주주 혹은 채권자의 이익을 위해 위험이 반영되는 가격기능 회복,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등이 필요하다. 이 경우 은행계약이나 시장계약의 폐해가 있을지라도 계약에 적합한 지배구조가 작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설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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