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대우 갈등 「폭발 직전」…한경연보고서 파문

  • 입력 1999년 7월 12일 20시 08분


삼성그룹과 대우그룹간에 파인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자동차 빅딜협상을 둘러싸고 삐걱거리기 시작한 두 그룹의 관계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11일 ‘자아비판’ 보고서를 내놓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한경연이 보고서에서 재벌들의 생존법으로 ‘실패 경영인 퇴진’ 등을 제시한 직후 삼성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 보고서 발간 배경을 탐색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한경연이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이고 대우그룹이 전경련 회장사인 점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김우중(金宇中)회장이 배후에서 보고서 작성을 조종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밀월관계를 유지한 두 그룹이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된데 대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두 그룹 총수는 지난해 빅딜 추진과정에서 여러 차례 얼굴을 맞대면서 실무진이 놀랄 만큼 서로 친밀감을 드러냈기 때문.

김우중회장은 9월 전경련 회장에 공식 취임한 뒤 사석에서 “2세 경영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안목과 경영능력이 탁월하다”고 이건희(李健熙)회장을 추켜세웠다. 이회장도 김회장이 제기한 경제위기 해법과 대정부 논리에 공감을 표시해왔다.

두 사람은 특히 힐튼호텔에서 부부동반 모임을 가진 것이 목격돼 고(故)이병철(李秉喆)회장과 김회장간 서먹했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된 것으로 비치기도 했다.

양 그룹 관계의 이상징후가 감지된 것은 자동차 빅딜협상을 시작하면서부터. 삼성은 자동차사업에서 명예롭게 퇴출하기 위해 대우전자와의 교환카드를 덥석 받아들였지만 협상이 계속 꼬이자 대우측 진의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반면 대우는 삼성측이 대우전자 속사정에 정통한 전 임원을 비밀리에 스카우트한 뒤 ‘부실 대우전자를 인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자 감정이 상했다. 삼성은 이때부터 ‘삼성차는 가동할수록 적자가 난다’는 대우측 주장이 자금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고 빅딜이 대우지원으로 흐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사이가 벌어진 것은 3월 말 승지원 회동 이후. 대우 관계자는 “재계 선배인 김회장이 직접 승지원을 찾아가 삼성 금융계열사가 회수해 간 대우에 대한 여신을 회복시켜줄 것을 약속받았지만 삼성 실무진이 지키지 않았다”고 삼성을 비난했다. 삼성은 문서로서 약속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대우그룹의 삼성에 대한 감정은 극한 상태로 치달았다. 지난달 열린 대우 사장단회의에서는 “형편이 좋아지면 두고보자”며 삼성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두 그룹간 갈등을 크게 우려하면서도 대책이 없어 고민하는 상태. 한 고위관계자는 “정부의 압박공세 앞에 자중지란(自中之亂)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라며 “감정이 섞인 경쟁은 기업발전에 해독이 된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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