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특별법 추진의미]정부,재계빅딜案 평가「지원」

  • 입력 1998년 10월 19일 19시 25분


우리나라를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몰아넣은 ‘악역’ 가운데 하나인 기아자동차 처리의 가닥이 이 회사 부도 1년3개월만에 드디어 잡혔다.

또 기아자동차 처리문제가 5대 그룹 사업구조조정과 맞물려 재벌 구조조정의 큰 틀도 잡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재계가 요구해온 구조조정촉진 특별법 제정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요컨대 재계는 구조조정의 대체적인 밑그림을 마련했고 정부는 이들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일의 기아자동차 3차 입찰 낙찰자 발표는 단순히 현대자동차의 기아 인수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재벌 구조조정의 틀〓현대그룹은 현대자동차의 기아 인수에 대한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그동안 완강하게 고집해온 발전설비와 철도차량 부문의 단독경영권을 포기했다.

현대그룹은 기아 인수를 위해 이같이 양보함으로써 2세 형제들이 각각 독자적 기업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5대 그룹 사업구조조정에 가장 비협조적이었다는 정부와 여론의 인식도 상당히 해소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5대 그룹은 7개 업종 구조조정에 있어서 반도체 부문만 남기고 경영주체의 확정에 성공했다.

반도체 부문도 11월말이면 경영주체가 일단락될 전망이다.

다만 현대그룹의 △기아 낙찰 성공과 △발전설비 및 철도차량 부문 양보라는 양면적 결과가 반도체 부문에서 경영주체권을 다투고 있는 LG반도체와 현대전자 가운데 어느 쪽에 유리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현대의 기아 인수가 성사되면 국내 자동차산업은 현대와 대우 양사체제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지만 삼성자동차 처리문제가 미결로 남아 있다.

재계와 정부에서는 삼성자동차가 독자 생존의 길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별법 추진의 의미와 문제점〓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재계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구조조정안을 내놓은데 대한 일종의 ‘선물’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 일각에서는 재계가 요구한 상당 부분이 이미 법적으로 정비돼 있어 특별법의 도입에 큰 어려움은 없다는 입장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현행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방식보다는 신속처리절차(패스트트랙)를 담은 부실기업 처리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검토 발언도 ‘립서비스’에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시각조차 있다.

재계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크게 △기업의 합병 분할 부동산매각에 따른 세제 금융지원 △계열사 상호지급보증 해소와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에 따른 자금부담 완화 △대출금의 출자전환 허용 등이다.

정부는 이 가운데 합병 분할 부동산매각에 따른 세제 정비는 이미 마친 상태이며 대출금 출자전환도 세계은행(IBRD) 등의 권유에 따라 기업구조조정에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상호지보 해소 등 자금부담을 덜어달라는 부분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부실기업 퇴출 등 구조조정 비용을 금융권에 넘기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부분이어서 정부로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전경련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퇴출기업의 손실을 계열사들이 나눠가졌던 것을 앞으로 부담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전경련 관계자는 “계열사 퇴출에 따른 지급보증 등의 손실을 계열사가 떠안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라며 “대기업 계열사가 퇴출할 때 부채 및 고용승계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음에도 관련 법들이 산재해 명확한 기준을 잡기 힘들다”고 밝혔다.

재계는 더 나아가 부채비율 200% 감축기준을 완화해줄 것을 요구할 움직임이지만 정부는 현재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특혜 시비’이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제대로 진행할 경우에만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어떤 기준으로 이를 판가름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 기업에만 이같은 지원을 한다는 것이 다른 부문 개혁과의 형평성에 비춰도 비판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다.

특히 IMF나 IBRD 및 미국 정부 업계 의회 등이 재벌 구조조정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쉽게 특혜 시비를 불러올 빌미를 제공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22일 정부―재계 간담회에서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은 최소한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향후 기업 구조조정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재계측 요구의 수용범위를 조금씩 넓혀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도 보인다.

정부와 재계가 또 한차례 줄다리기를 하겠지만 재벌 구조조정에 대한 다각적 지원방안이 보다 구체적으로 떠오를 것임을 예고한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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