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여파/무역업계]신용장 개설못해 발만 「동동」

  • 입력 1998년 6월 30일 19시 32분


전자부품 수출업체인 T사의 이모 사장은 30일 하루종일 바이어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제품 대금 20만달러를 송금했는데 왜 물건을 선적했다는 통보를 안해 주느냐.”

올초 어렵사리 확보한 남미의 바이어는 “무역사기 아니냐. 클레임을 걸겠다”고 성화였다.

그러나 이사장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주거래 은행인 동남은행이 퇴출대상이 되면서 바이어의 송금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

“바이어가 한국금융기관은 믿지 못하겠다면서 거래선을 다른 나라로 옮기겠대요. 어떻게 뚫은 바이어인데….”

5개 은행의 퇴출에 따른 업무차질로 무역업계, 특히 중소업체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5개 퇴출은행과 거래를 해온 무역업체는 2천8백여개. 은행의 업무 마비로 신용장개설 수출환어음매입 등 무역관련 업무가 ‘올스톱’되는 바람에 이들 업체들의 무역업무도 거의 마비상태다.

해외 바이어들중 상당수는 “한국의 은행들이 개설한 신용장을 못믿겠다”면서 거래를 끊을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인천의 건자재업체인 D사는 미국 거래선이 지난달 17일 동남은행에서 개설한 원자재 수입 신용장을 트집잡으며 “인수은행이 새로 개설해달라”고 요구해온 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택은행의 인수팀은 “지금은 처리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D사는 납품 기한을 못맞출 것을 우려하고 있다.

H물산은 4만달러어치의 수출 주문을 받았지만 은행과 신용장 개설 상담을 못하고 있는 상태. H사는 “인수은행의 누구와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몰라 답답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한국시장을 불신하게 된 해외 바이어들을 대거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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