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주최 「빅딜」좌담회]기업-정부,역할분담 노력할때

  • 입력 1998년 6월 25일 19시 17분


《55개 퇴출기업 발표 이후 재계의 최대 이슈는 역시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정부는 과잉 중복투자된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겠다는 입장이고 재계는 무리한 빅딜은 엄청난 부작용을 수반한다며 한박자 늦추려는 분위기다.윤원배(尹源培)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손병두(孫炳斗)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그리고 기업인출신 정치인인 이명박(李明博)전국회의원의 좌담을 통해 빅딜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바람직한 추진방향은 무엇인지를 짚어본다.》

▼윤원배부위원장〓빅딜을 놓고 여기 저기서 말들이 많습니다만 정부는 빅딜을 하라 마라 공식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고 또 그렇게 추진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빅딜이 부실을 도려내고 생산성을 높이는 하나의 방안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스스로 해주길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빅딜논의의 발단은 한 민간연구소에서 제시한 아이디어가 정치권으로 연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5개 퇴출기업도 은행권이 스스로 판정, 발표한 것이며 정부는 여신심사원칙만을 지키도록 한 것뿐입니다. 과거 수십년간 여신심사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진작 퇴출됐어야 할 기업들이 살아남은 것이지요. 앞으로도 정부는 ‘원칙’을 중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퇴출기업은 계속 나올 것입니다.

▼손병두부회장〓기업 구조조정은 인수합병(M&A) 자산매각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굳이 빅딜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재계는 이미 IMF 이전부터 위기상황을 느끼고 구조조정특별법을 만들 것을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뒤늦게 구조조정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아직까지 후속조치가 원만하게 진전되지 않고 있어요. 빅딜을 조정해주는 중재역할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은행은 자체 구조조정중이라 여력이 없고, 그렇다고 정부가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정부가 빅딜을 하라니까 각 그룹이 만나긴 만날 겁니다. 그러나 사업교환에 따른 인력승계나 상호지급보증 해소, 거래에 대한 과세 문제가 명쾌하게 풀리지 않아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빅딜이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마련해주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봅니다.

▼이명박전의원〓우리기업들은 세계화 추세에 미리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국내에서의 경쟁에만 치중해왔습니다. 국내 생산규모가 한계에 이르렀는데도 국내경쟁 때문에 시설을 무한대로 확장해왔지요. 정부도 정치논리에 좌지우지되면서 불과 1,2년전, 지금은 빅딜대상이 된 업종을 허가해줬습니다. 결국 모두에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구조조정 원칙에 대해서는 정부와 재계가 동의하고 있지만 각론에선 서로 입장이 다릅니다. 윤부위원장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상당부분 정부가 개입돼 있다는 느낌입니다. 재계 정부 정치권 모두가 정직한 자세로 각자 역할을 분담해야 해결책이 나옵니다.

▼윤부위원장〓과거에는 정부도 분명히 정책상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이려는 경쟁이 아니라 자존심 싸움만 해 왔다는 겁니다.

정부가 세제정비 등 빅딜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기업들은 스스로 노력한 뒤 정부 정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정부에 요구만 하면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못 느끼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의 발언은 자발적 구조조정을 촉구하는 말이지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업들은 현재 주어진 여건에서 빅딜을 포함해 가장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앞으로 제도적으로 보완하겠지만 새로 법을 만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일관성과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빨리 한 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방향이 돼야 합니다.

▼손부회장〓기업은 아무 것도 안하고 정부에 요구만 한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구조조정은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세계 각국의 구조조정을 봐도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선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얘기해야 합니다.

▼윤부위원장〓빅딜 과정에서 상호지보를 끊어주는 등의 지원을 하려면 국민세금이 들어갑니다. 기업부실에 대한 책임은 우선 경영진이 지도록 해 국민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입니다. 처음부터 무조건 도와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전의원〓정부가 기업을,기업이 정부를 불신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빅딜을 추진하는 것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빅딜은 운동선수의 트레이드와 마찬가지로 못쓰는 것만 내놓고 쓸만한 것을 가져오겠다는 생각은 안됩니다. 기업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기업과 정부가 서로 책임을 미루면 위기 극복이 안됩니다. 큰 줄기는 정부가 길을 터줘야 합니다. 길을 안 터주고 독촉만 하면 시간이 더 걸리게 되니까요.

▼윤부위원장〓정부에서도 나름대로 빅딜 지원제도를 마련중입니다. 그러나 기업이 좀더 적극적으로 해줘야 경제회생이 가능합니다.

정부가 어떤 그룹에 어느 회사를 넘기라는 식의 방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거래라도 개입이나 강요는 안합니다. 그래도 재벌그룹이 불공정 거래를 통해 부실계열사를 끌고 가는 것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룹들이 부실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우량계열사의 돈을 써서 전체 부채비율이 500%를 넘어섰습니다. 외국 금융기관들은 부채비율이 500%를 넘는 재벌에 어떻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느냐며 놀랍니다.

▼손부회장〓원칙엔 동의하나 현실은 다릅니다. 원칙대로 해서 문제가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우리 기업을 한꺼번에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려면 한 군데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우리 기업이 잘못한 게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기업환경은 선진국과 같지 않은데 기업 혼자 선진국 수준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기업의 개혁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명령으로 일이 된다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가령 일본 기업도 부채비율을 500%에서 200% 이내로 만들기까지는 20년이 걸렸는데 우리 기업에 2년내 하라는 건 무리가 아닙니까.

▼이전의원〓5대그룹이 빅딜을 안하면 대출을 중단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빅딜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들은 사업부문도 다르고 값어치도 달라 성사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빅딜을 질질 끌면 정부는 어떻게 할 겁니까. 빅딜 논의는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해야 합니다. 빅딜과 관련한 정책이 혼선을 빚지 않으려면 전문가들의 정책보좌가 필요합니다. 정치권이 개입해 정치논리로 풀려고 하는 건 곤란합니다. 한탕주의적 발상은 국가적으로 큰 손해가 될 뿐입니다.

▼손부회장〓빅딜은 냉정한 경제적 분석 위에서 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70년대 중화학공업 구조조정처럼 나중에 불씨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경구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초 빅딜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도 1주일만에 이를 해치우려고 했다가 안되니까 국민이 기업과 정부를 불신하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빅딜을 구조조정의 전부로 여기는 분위기도 문제입니다. 빅딜은 그중 하나일 뿐입니다. 또 현재 논의 되고 있는 ‘3각 빅딜’ 외에 다른 형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2개 회사간 빅딜이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빅딜 과정에서는 특히 노동자 승계가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삼성중공업이 볼보에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고용승계가 안돼 삼성이 떠맡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의 의미가 없습니다.

▼윤부위원장〓정부에 들어와서 느끼는 가장 안타까운 점이 정부정책이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믿지 않고 대통령이 한마디 해야 겨우 움직이는 시늉을 합니다.

정부와 기업간 현실인식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가령 손부회장께서는 부채감축에 20년 걸린 일본의 예를 들었는데 우리에겐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의 세계 경제상황에서는 그만한 부채를 안고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정부와 같은 수준에서 이해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3각 빅딜만이 전부가 아니다는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또 정부가 기업들에 언제까지 빅딜을 하라고 시한을 정한 것은 없습니다.

▼손부회장〓위기상황이니까 빨리 하는게 좋죠. 기업도 지금 느긋한 심정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목숨이 경각에 처해 있는 상황인데 여유부릴 틈이 있겠습니까. 다만 정치권도 경제관련 법안을 빨리 처리해주는 등 좋은 기업환경을 만들어주는게 필요합니다.

▼이전의원〓빅딜을 성공시키려면 기업들은 제값을 받겠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또 정부도 무리하게 강요하면 특정 기업에만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기업은 정부와 가까워 이익을 봤다는 억측도 나올 수 있습니다. 급하긴 해도 과거와 같이 불신을 자초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민간기업의 빅딜도 중요하지만 공기업 금융기관의 빅딜도 시급합니다. 공기업에서 구조조정의 모범을 보여야 민간기업도 자발적으로 나설 겁니다.

빅딜을 할 때는 세계적인 수요와 생산량을 분석, 경쟁력을 따져봐야 하며 장기적인 안목도 필요합니다. 당장 부실하고 운영하기 힘들다고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곤란합니다. 지금 부채비율은 높아도 장래성이 있을 때는 육성하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전경련의 기능도 60,70년대와는 달라져야 합니다. 기업이 먼저 안하니까 정부가 자꾸 개입하려고 한다는 점을 알고 스스로 나서는 적극성을 보여야 합니다.

▼손부회장〓전경련은 새 회장 취임을 맞아 변신중입니다. 결국 21세기에는 뭘해서 먹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심각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전의원〓기업에 대해서는 이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기업인이 매도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기업을 몰아붙이는 식의 정책이나 발언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윤부위원장〓정부의 재벌 개혁안은 장기적인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퇴출기업 선정에서도 향후 전망을 함께 따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재벌개혁에 대해 일일이 개입하지 않고 공정경쟁의 틀만 만들어주려는 겁니다. 공정경쟁 원칙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개별 경제주체에 대해선 최대한 자율을 보장한다는 방침입니다.

▼손부회장〓기업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심히 변화하고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는 집단입니다. 이런 기업에 대해 애정을 가져주고 밉더라도 사기를 올려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윤부위원장〓상대방에대한애정이있어야 비판을할수 있습니다.정부의 정책도 이런 전제에서 비롯됐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리〓이영이·이명재기자〉yes202@donga.com

[참석자]

윤원배(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손병두(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이명박(전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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