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움켜쥐고 내놓지 않는다.”
“은행들이 수출업체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돈장사에만 열을 올린다.”
최근 무역금융이 극도로 위축된 것을 놓고 수출업계와 금융권간의 책임공방이 뜨겁다.
수출업계는 “정부가 잇따라 무역금융 지원 대책을 내놓고 은행장들을 불러 독려해도 은행 일선 창구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수출업체들은 “일부 시중은행들이 한국은행 지원을 받아 수출환어음 담보대출을 해주면서 한동안 한은 지원금리의 2배가 넘는 이자를 받는 돈놀이를 했다”고 비난했다.
물론 무역금융이 마비된 데는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무역금융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은행권 책임이 크다.
그러나 ‘자기 보따리는 풀지않고 남의 보따리만 열어놓으라’는 식의 대기업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다고 금융계는 눈을 흘긴다.
단적인 예로 금융권은 기업들이 국내 금융기관에 예치해둔 외화예금 규모가 96년말의 3배인 45억달러라고 지적한다.
외환딜러들은 “대기업들이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외화예금 등에 넣어두고 결제자금이 필요할 때는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를 매입하고 있다”며 “이것이 외환시장의 수급불균형을 부르는 주요 원인”이라고 비난했다.
H은행 업무통할부 직원은 “대기업 해외 현지법인들이 가지고 있는 외화예금이 수십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중소 수출업체들의 외화자금난을 풀기 위해선 먼저 대기업들이 움켜쥐고 있는 달러화를 외환시장이나 금융권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계는 대기업들이 무역환 어음제도를 악용, 중소 수출업체들의 외화자금난이 가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은행 외환추진부 한 관계자는 “무역환어음의 만기는 대개 60∼1백80일인데도 대기업들이 막무가내로 연장을 요구, 대개 3년 정도는 갚지 않고 버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때문에 무역금융에 사용할 수 있는 은행 자금 80% 가량이 대기업들의 전유물인 무역환어음에 묶여 있다”면서 “중소 수출업체들을 지원해주고 싶어도 충분한 자금이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천광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