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전세계 주요국 지도자와 특히 경제계 인사들의 이목은 뉴욕 런던 도쿄 프랑크푸르트 등 국제금융 중심도시에 쏠렸다.
국제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선진국 민간은행들이 한국지원문제를 놓고 세계 주요 금융중심지에서 일제히 모임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각국 중앙은행과 재무부가 이미 한국 지원방침을 밝혔지만 여전히 부도의 벼랑끝에 서있는 한국을 그대로 「부도처리」할 경우 세계경제에 일파만파의 악영향과 혼란이 오게 된다. 반면 한국지원을 공식 결정할 경우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의 외환위기는 해결의 가닥을 잡게 된다.
그 생살여탈(生殺與奪)의 결정은 실제 전주(錢主)인 이들 은행의 손에 달린 것.
특히 세계금융의 메카인 뉴욕 월가에서 열린 8개국 13개 주요은행 대표자들의 모임에 이목이 집중됐다.
뉴욕회의는 전세계 대한(對韓)채권은행들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
국제금융계의 거물들이 총출동해 세계금융총회를 방불케 한 뉴욕회의는 때마침 겨울비가 내리던 월가를 뜨거운 취재경쟁장으로 만들었다.
세계의 초대형 거물급 13개 은행 대표가 참석한 이날 모임은 당초 미국내 은행만으로 회의를 열기로 했으나 미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유럽과 일본의 은행들까지 불러 이처럼 규모가 커진 것.
오전 오후 두차례의 회의는 삼엄한 경비속에 모두 비공개로 열렸다. 취재진은 물론 한국 금융관계자들의 참관도 거절됐다.
먼저 오전회의에는 미국연방준비은행 맥도나우 뉴욕지부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메릴린치 등 미국내 5대 투자은행 관계자들이 만났다.
오전회의후 나온 성명은 너무 간단했다. 『5대 투자은행들은 한국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키로 동의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오후에 열린 13개 시중은행관계자들의 모임은 저녁식사시간이 다 돼서야 끝났다. 답변을 대신한 이들의 성명 역시 길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의 경제가 건강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한국상황은 단기부채에 지나치게 의존한데 따른 순간적 유동성 부족현상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우리는 각국별로 한국의 단기 유동성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지원노력을 취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결과에 대해 미재무부 로렌스 서머차관은즉각 『(사태가) 건설적인방향으로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환영했다.
이날 채권은행단은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밝히지 않았지만 △단기부채 상환기일 연장 △각국 은행들의 협조융자 실시 △기존 대출의 재개 및 대출확대 등 세가지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국제금융계는 전망했다.
「두번의 긴 회의와 두차례의 짧은 성명」은 즉각 전세계에 반응을 일으켰다.
도쿄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성명이 나왔다. 일본내 9개 주요은행도 이날 회의를 갖고 대한 융자금 상환만기 연장을 결정했으며 독일과 네덜란드의 은행들도 이날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국제금융계는 이번 회의 결과가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지금까지 취해진 어떤 조치보다 강력한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한국의 외환위기가 채권은행들이 일시에 돈을 걷어들이는 바람에 발생한 분위기의 문제가 컸기 때문에 이날 회의 결과는 사태호전에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는 것.
「연말 뉴욕회동」에 힘입어 단기외채 9백22억달러(한국정부 공식발표)에 대한 상환압력에 시달려온 한국은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됐다.
한국의 외환위기 먹구름이 걷히자 29일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가 폭등했고 한국계 채권의 이자율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지수는 전날보다 113.10포인트 급등한 7,792.41에 마감돼 하루 상승폭으로는 4주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주가오름세는 한국의 부도위기가 사라졌다고 판단한 기관투자가들이 주식매입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한국계 주식들은 코리아 펀드를 제외하고는 약보합세를 보였는데 이는 한국의 위기탈출 전망이 이미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CNN 등 미국내 주요 언론들도 이날 뉴욕모임을 머릿기사로 다루었다.
그러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등 신용평가기관들은 『이번 조치로 상황은 상당히 개선되겠지만 한국의 금융시장 재건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뉴욕〓이규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