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스템의 마비로 금융―기업간의 신용은 물론 기업끼리의 신용마저 깨져 실물경제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현금이 아니면 거래를 중단하는가 하면 극단적인 소비위축으로 생산 유통 수출 전부문이 위기에 몰려있다.이같은 상황이 연말까지 지속된다면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제조업 기반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게 업계의 우려다.》
▼ 붕괴되는 수출입시스템 ▼
무역업체들의 신용장 개설이 어려워져 수출입 시스템이 붕괴위기에 처했다.
신용장을 개설해주는 국내은행이 거의 없는 데다 용케 신용장을 개설해도 외국은행들의 재확인(컨펌LC)을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현재 외상기간이 최장 1백80일인 유전스 신용장은 모든 은행에서 거절하고 있으며 외상기일이 10일 미만인 일람불 신용장도 굴지의 종합상사들에만 허용되는 실정.
종합상사들의 경우 매월 15억달러 정도를 수출하고 있으며 수출신용장 네고자금은 하루 6천만달러 정도. 그러나 은행들의 기피로 이중 10% 정도만 조달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내년 1월 수출실적이 급격히 하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수출입 금융관련 대책으로 수출환어음 담보대출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은행들의 외면으로 전혀 도움이 안된다.
▼ 조업단축 속 재고증가 ▼
전자업체 가전생산라인의 공장 가동률이 70%대로 떨어졌다. 2교대 근무는 찾아볼 수 없고 잔업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생산해도 판매가 안되기 때문에 괜히 생산량을 늘렸다가는 재고만 쌓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 내수 매출이 지난해 같은 달의 40∼60% 수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도 조업단축에 쫓기고 있다. 판매부진 등으로 상용차라인의 가동을 멈춘 상태며 일부 부품협력업체들이 현금결제를 요구하고 있어 언제 다른 라인이 멈출지 모르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차값을 최고 10% 할인 판매하기로 했지만 기름값 인상 등 탓에 판매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지난 11월 한달 동안 수출을 포함한 전체 자동차 판매대수는 모두 23만9천7백대로 작년 같은 기간(28만9천대)에 비해 17%가량 줄었으며 이달들어 10일까지의 내수판매는 평소의 50∼60%로 줄었다.
중견그룹인 제일제당이나 산내들그룹 등 대부분의 식품업체에서는 신용이 좋지 않은 거래처에 대해 물품공급을 중단하고 생산을 줄이고 있다. 제일제당 관계자는 『아무리 많이 팔아도 거래처가 부도나면 헛수고』라며 『물품대금을 현금으로 내거나 담보가 충분한 거래처를 제외하고는 납품을 중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 거래 위축된 유통업계 ▼
매년 두자릿수의 매출신장을 맛봐온 백화점업계는 올들어 계속 부진을 거듭하던 중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3∼7일 송년세일중 대형백화점 매출은 작년보다 20∼30%씩 격감했다. 대형백화점 매장은 한창 붐벼야 할 오후 2∼3시경에도 썰렁하기만 하다. 특히모피등 고가제품 매장은 매출이 작년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성탄절을 2주일 앞두고 있지만 들뜬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신세계백화점 직원은 『크리스마스 행사는 별관 한쪽에서 조촐하게 하고 대신 알뜰구매전 등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은 더 심하다. 남대문시장 아동복상가의 경우 2백여개 중 30개 점포가 사실상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20년째 가게를 지켜온 김모씨는 『불황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경기 자체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