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한국 금융시장이 붕괴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재계에서는 금융실명제 유보 등 특단의 경제회생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아직도 우리경제의 「펀더멘털(기초)」은 튼튼하다며 『웬 호들갑이냐』는 반응이다.
▼상황인식 차이〓전경련 등 재계에서는 60년대 이후 최악의 경제상황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전경련 박종선(朴鍾善)조사본부장은 『고비용저효율구조가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우리 제도나 정책이 국제수준보다 크게 떨어져 외국인 투자자들이 계속 빠져 나가고 있다』며 『이에 대한 신뢰가 없는 한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느끼는 경제실상은 해외의 한국평가와 비슷하다. 현대그룹 이계안(李啓安)전무는 『지금 기업들은 위기상황을 지나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국내사업이 한계에 이른데다가 우리의 주된 시장인 동남아 등지의 구매력마저 크게 떨어져 공장가동률을 유지하지도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이나 정부의 시각은 다르다.
이상헌(李相憲)한은 조사1부장은 『현재 우리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극복이 가능하다』는 입장.
재정경제원 관계자들도 『부실기업의 퇴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한국경제가 동맥경화상태에 있다』면서도 『수출이 늘어 경상수지적자가 줄어들고 임금이 매우 안정돼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재고가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도가 늘었다고 걱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업설립이 어느때보다 많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식차의 원인〓재계에서는 정부의 경제인식에 대해 『정부는 시장에 참가한 당사자가 아니어서 시장환경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거시경제지표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또 거시경제지표 자체도 가격요인 등 수익성부분은 반영돼있지 않는 등 문제가 많다는 것.
재경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업과 국민이 지표상 내수와 투자부진만을 인식하고 펀더멘털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재고 증가율이 크게 축소되는 등 경기회복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최우석(崔禹錫)소장은 『정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대외적 신인도와 국민에 대한 신뢰를 고려해 낙관론을 펴고 있다』며 『정부 스스로 위기상황임을 인식해 지금이라도 수술채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주목해야 할 경제지표〓민간경제연구소들은 우리경제 실상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양적 성장지표보다는 질적 성장지표를 봐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경련은 수출증가율과 함께 수출 채산성을 나타내는 교역조건과 기업의 수익성, 시설투자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출가격이 작년에 12% 떨어진데 이어 올상반기에 13% 떨어져 수출물량이 늘어나도 채산성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것.
상장회사의 순이익증가율도 지난 95년에는 42% 증가했지만 96년들어 40% 감소했으며 올 상반기에 29% 감소했다. 또 내년도 30대 그룹의 시설투자는 92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보다 감소(-1.4%)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영이·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