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가 경제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구나. 지난 12∼22일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둘러본 느낌이었다.
이들 나라의 경제 안정화와 성장기반 강화 뿐 아니라 역내 경제통합과 시장 국제화가 뚜렷하게 진전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중남미가 역동적 성장지대로 떠오르는 현실은 우리나라에도 시장 확대와 투자 증대의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이번 경제 기행에서 다음의 점들도 거듭 느꼈다. 국가 지도자가 적확한 목표설정 능력과 정합성 있는 정책 추진력을 가졌는지 여부가 경제의 명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정치안정 없이는 경제안정도 어렵다는 사실, 규제는 부패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실 등이다.
멕시코는 94년 12월의 페소화 가치폭락에서 비롯된 금리 폭등과 임금 물가의 연쇄 상승 및 경기침체라는 총체적 경제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었다.
▼ 정치안정이 회생 열쇠 ▼
95년 마이너스 7%의 성장에서 작년 5%의 성장으로 돌아섰고 올해는 7%대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95년 52%까지 치솟았던 인플레는 작년 28%, 올 상반기엔 8.7%로 진정세를 보였다. 연간 1백만명의 새로운 실직자를 낳은 95년 5.5%에 달했던 실업률은 작년말에 4.1%, 올 6월말엔 3.3%로 낮아졌다. 페소화도 강세 기조의 안정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위기 극복에는 미국 등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정치의 민주화와 안정, 금융 재정의 긴축 견지와 「작은 정부」의 실천, 과감한 규제완화와 민영화 추진 등이 내적 요인이 됐다고 관계자들은 풀이했다.
3년전 경제위기의 원인으로는 페소화 고평가 정책, 경상수지 적자 누적, 외환보유고 고갈 등과 함께 정치 불안이 지적됐다. 멕시코 외환보유고는 94년 2월 사상최고인 2백83억달러를 기록했으나 외환위기가 닥친 그해 말 71억달러로 격감했다. 그해 1월 심한 빈부격차에 분노한 농민들의 무장봉기와 3월의 콜로시오 집권당 대통령 후보 암살사건 이후 정국이 혼미해지자 해외투자가들과 국내 재벌들이 앞다투어 외화를 유출시킨 탓이었다.
그러나 멕시코는 경제위기 이후의 정치안정과 규제완화 및 거시지표의 호전 등으로 외자를 대거 유입시키고 있다. 이곳에 생산기지를 진출시킨 대우전자 중남미본사 이승복 대표는 『멕시코의 투자 여건은 매우 좋다. 특혜가 많지는 않지만 규제도 거의 없다. 공장 세우기가 한국 내에서보다 훨씬 쉽다』고 말했다.
칠레는 남미 경제의 모범생다운 안정적 성장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 나라 역시 군정에서 민정으로 바뀐 정치적 과도기인 90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7%를 기록하는 불안을 보였지만 정치가 안정되면서 작년과 올해는 5∼6%대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 금융 독립과 자율 자부 ▼
남미에서 가장 부패하지 않다는 점도 경제 전반과 기업활동에 순풍이라고 수입자동차 판매회사의 알바로 라라인 대표는 강조했다. 73년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키고 등장한 피노체트 군정은 부패를 철저히 다스렸으며 그것이 민정 이양 후에도 국가 기강으로 자리잡았다는 얘기였다. 적은 규제가 부패의 가능성을 줄였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금융관행도 명쾌했다. 칠레 재무부의 귀예르모 라라인 자문관,중앙은행의 카를로스 부드네빅 금융분석관, 시중은행 BHIF 간부인 카를로스 마르타비트 등은 『재무부는 거시정책을 담당하고 중앙은행은 100% 독립돼 있으며 시중은행은 철저히 자율적으로 경영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재무부나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은 물론이고 2개의 국책은행에 대해서도 인사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규제-부패 다 털어내 ▼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초(超)인플레 경기침체 외채위기로 경제가 후퇴했던 80년대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에서 탈출하고 있었다. 각각 민영화 개방화 화폐개혁 등으로 남미의 대국 지위를 되찾는 모습이었다.
브라질의 경제 재생은 페르난도 카르도소 대통령에 의해 주도됐다. 재무장관 출신인 그는 94년부터 강력한 안정화 정책인 헤알 플랜을 펼쳐 93년에 2,400%를 넘는 인플레를 기록하는 등 14년간에 걸쳐 지속된 스태그플레이션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폭넓은 정부 규제와 부패가 발전의 저해요인이라고 두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공업협회의 요르게 블랑코 전회장은 『부패가 발전에 장애가 되지만 언론과 기업의 자유화로 새로운 부패의 가능성이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들 나라의 거대한 시장 잠재력은 우리 기업들의 더 적극적인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고 서재경 ㈜대우 중남미 본부장은 말했다.
배인준(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