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9백원 돌파]기업들,예상넘은 급등에 대혼란

  • 입력 1997년 8월 25일 20시 17분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25일 9백원선을 넘어서자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특히 환율이 불안정한 상승세를 보임에 따라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무작정 달러 사재기에 나서 환율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 종합상사의 재무담당 L부장은 『원―달러 환율이 이달말까지는 9백원을 넘지않을 것으로 보고 자금 계획을 세웠는데 환율이 너무 빠른 속도로 치솟아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L부장은 『정부가 환율 상승속도를 조절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기업들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경〓한국은행 관계자는 『주초 외화자금 결제수요가 몰렸고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의 환율저지선을 9백5원으로 전망함에 따라 환율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환딜러들은 종금사들의 자금난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등 「시장에 팽배해 있는 불안심리」가 환율급등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도이치은행 국내 지점의 한 딜러는 『시장참여자들이 9백원을 넘기려는 시도를 했는데도 한국은행이 개입하지 않자 한국은행의 마지노선이 9백5원대로 물러선 것으로 판단, 너도나도 달러를 사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가 내놓은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단기적으로 달러를 공급하는 효과가 없다는 점 때문에 전혀 약효를 내지 못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날 『외환당국의 환율안정대책이 일관성이 없는데다 계속 실기(失機)해 환율시장 불안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즉 외환당국이 환율상승을 방어할 때는 극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방어선에서 물러설 때는 한마디 설명도 없어 외환당국에 대한 신뢰성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전망〓대부분의 환율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9백원이라는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짐에 따라 조만간 9백5원선을 넘어선 뒤 9월말까지는 9백10∼9백20원선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셔널웨스트민스터은행 국내지점의 한 관계자는 『달러수급을 볼 때 9월말에는 9백30원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면서 『9월 이후에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외환전문가들은 환율상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이지만 현재의 외환보유고를 감안할 때 정부의 개입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외환은행 외화자금부의 한 관계자는 『외환시장이 불안에 휩싸인 가장 큰 이유는 기아사태』라면서 『기아사태의 해결 없이는 안정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장〓원―달러 환율이 오를 경우 수출경쟁력이 개선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없진 않지만 단기적으로 부정적인 요인이 많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외화자산보다 외화부채가 많은 대기업들은 이때문에 연말 결산에서 막대한 평가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환율예측이나 위험회피(헤지)능력이 뒤떨어진 국내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은 환율이 급격히 오르내릴 때마다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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