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재무제표에서 건전한 성장이 나온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姜末吉(강말길·55)LG유통사장의 경영방침이다. 강사장은 풍부한 수치와 자료를 머리 속에 입력, 현장(점포)의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뚫고 있다. 입사 이후 줄곧 재경분야에서 근무, 그룹내에서 손꼽히는 회계 재경통이다.
강사장이 직영 슈퍼체인 매장 등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직원들의 등엔 식은 땀이 흐른다. 그의 질문법은 「김밥을 하루에 얼마나 파느냐」가 아니라 「어떤 품목이 몇개나,주로 어느시간에 많이 나가는가」라는 식이다. 최고경영자가 재경전문가이다보니 누락 과장보고는 생각할수도 없다.
兪相玉(유상옥·64)코리아나화장품 사장은 36년 전 취득한 계리사(공인회계사의 옛 명칭)자격증을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하면서 딴 자격증에는 「145번」이라는 숫자가 선명하다. 대한민국에서 1백45번째 계리사임을 증명하는 번호다.
이 자격증은 유사장이 동아제약 라미화장품을 거쳐 코리아나를 창립한 지 10년도 안돼 정상급 회사로 키우는 데 중요한 밑천이 됐다. 그는 자신의 강점중 하나인 업무추진력이 「정확한 숫자파악」에서 나왔다고 강조한다.
『기업인은 숫자에 밝아야 합니다. 회사장부를 들여다보고 어디에 문제점이 있는지 제대로 집어내야 신속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거죠』
「숫자에 밝은」 기업인은 인수합병기에 특히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선경증권 朴道根(박도근·55)사장은 17년전 회계사 자격증 덕을 톡톡히 봤다. 그는 재계 서열 12, 13위권이었던 선경이 일약 5대 재벌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던 유공인수 때 실무를 맡았다. 「3년 유예기간중 흑자전환」이라는 인수조건을 맞출 수 있는 지를 파악하기 위해 몇달간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 때의 활약이 그의 승진가도를 열었다는 사실을 선경사람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박사장의 경우처럼 공인회계사 출신들은 대부분 회사의 재무 회계통으로 자리잡아 승진이 빠르다. 鄭壯皓(정장호)LG텔레콤사장은 회장실 입사후 5년만에 부장을 달았다.李憲出(이헌출)LG카드 부사장도 그룹 회장실에서 재무팀을 맡으면서 고속승진했다.
수익성위주 경영이 득세하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기업세계를 지배하는 요즘들어 회계사 출신 경영인들의 위상은 더욱 빛난다. 「안방 살림꾼」에서 「구조조정의 설계사」로 나서는 일이 잦아진다는 얘기다.
지난달 말 현재 전국의 공인회계사 자격증 소지자 3천9백3명중 기업체 최고경영자는 60여명선. 부실기업 살리는 데 수완을 발휘해 「마이다스의 손을 가졌다」는 평을 들었던 신호그룹 李淳國(이순국)회장을 비롯, 녹십자 權桂洪(권계홍)고문 현대투자자문 李正雨(이정우)회장 朴禎圭(박정규)사장 등도 회계사 출신이다. 물론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일단 기업 최고자리에 오르면 별 도움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선경증권의 박사장은 『최고경영자는 사람을 잘 다스리고 여러가지 지원을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며 「자격증」의 효능에 회의적이다. 오히려 부하직원들이 올린 재무관련 결재서류의 오류가 너무 잘 보여 부하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지적하느라 고심하는 일이 많다는 것.
그러나 LG유통의 강사장은 『회계사 출신의 최고경영자들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만큼 진취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다』고 회계사 자격증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다.
신한회계법인의 李哲勳(이철훈)공인회계사는 『회계사 출신 경영자들은 회사 전체의 사업흐름을 파악하는 데 남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다른 기업의 장점을 따오거나 신규사업 진출의 타당성을 점검하는 데 적격』이라고 말했다.
〈박내정·정경준·이명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