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6년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한국 관련 기사를 게재하면서 울산시를 현대시로 표기한 적이 있다. 현대그룹이 한적한 어촌이던 울산을 대규모 중공업 생산기지로 탈바꿈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강한 인상이 낳은 「오기」(誤記)였던 셈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호남 출신 우수 대졸자 가운데는 삼성그룹 취업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생산 거점이 대부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영남 쪽에 몰려 있는데다 기껏 입사해도 지역 텃세 때문에 「밟힌다」는 선배들의 충고에 미리 몸을 사렸던 것.
『LG정유의 옛 이름이 「호남」정유였던 점은 오너가 경상도 출신이란 사실을 두드러지지 않게 하는데 큰 보탬이 됐다』(LG그룹 관계자)
구미와 창원지역에 대규모 전자 생산기지를 구축한 LG그룹은 화학단지를 여천공단에 입주시킨 덕도 보았다는 얘기다.
70년대부터 중화학산업을 일궜던 한국의 대표적 그룹들은 수출입의 태반을 차지하는 미국 일본 등과의 교역운송 편의성도 감안, 너나없이 경상도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울산만 하더라도 鄭周永(정주영)명예회장이 황무지에 조선소를 세운 이후 계열사들이 속속 입주, 지금은 7개 계열사가 울산지역 전체 생산시설 부지의 55%에 이르는 3백80만평에 자리잡고 있다.
삼성도 전체 생산거점의 53%를 경남권에 포진시킨 상태.
그러나 이같은 지역편중 현상은 대그룹들이 80년대 중반부터 「첨단」쪽으로 사업방향을 틀면서 퇴조의 시기를 맞고 있다.
수원전자단지(삼성) 기흥반도체단지(삼성) 청주반도체단지(LG) 서산화학단지(삼성 현대) 등이 대그룹 생산거점 분산의 대표적인 사례.
최근 설립한 현대와 대우의 첨단형 자동차공장도 각각 전주와 군산에 자리잡았다.
『경상도 지역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구축할 만한 입지를 더 이상 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중국 등 아시아권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자연스럽게 서해안이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대우그룹 비서실 이사)
『삼성의 최대거점은 이제 수원이다. 서울과 인접, 양질의 기술인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이점이다』(삼성 비서실 張忠基·장충기이사)
글로벌경영을 내세우고 있는 국내 4대 그룹은 이제 생산입지에 있어서 「전방위 지역경영」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현재 4대그룹중 제조활동(사무용 빌딩 제외)에 가장 넓은 생산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그룹은 현대로 6백97만평. 삼성과 대우가 각각 4백60만평과 4백25만평이며 LG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1백45만평의 생산입지를 갖고 있다.
『앞으로 울산과 같은 거대 거점을 구축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내수성장이 한계에 달한 사업이 많아 앞으로 수출활동에 유리한 해안지역의 산업입지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현대그룹 문화실 임원)
실제로 2000년대 한국을 대표할 새로운 생산거점으로는 부산(삼성) 인천(대우) 군산(현대) 등 해안지역의 비중이 높아질 전망이다.
한편 각 그룹은 대규모 장치산업이나 중공업에서 「땅을 적게 쓰는」 첨단업종으로 사업구조를 조정하고 있으며 해외거점확보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내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