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錢主들,정부 실명제 보완 움직임 『시큰둥』

  • 입력 1997년 3월 13일 20시 10분


[허문명기자] 정부의 금융실명제 보완 움직임에 대해 정작 「수혜자」라고 할 얼굴 없는 거액 전주(錢主)들은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정부의 실명제 보완 방침은 지하자금을 양지로 끌어올려 산업자금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에따라 「검은돈」을 실명으로 전환할 때 약간의 과징금만 내면 출처를 묻지않고 별도의 장기채권을 만들어 숨은 돈이 움직이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 명동일대에서 10여년간 사채를 굴려온 A씨는 『전주들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지금도 금융기관에서는 주민등록번호까지 위조해가며 차명을 알선해준다. 남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돈을 숨길 수 있는 상황에서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해줄테니 얼굴을 드러내라는 얘기는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나섰다가 나중에라도 출처를 조사하면 정부 말만 믿고 따른 사람만 손해보는 것 아니냐』며 『지난 93년 실명제 실시 직후에도 자금출처를 묻지않는 산업채권을 한두달 팔았던 적이 있었으나 별 인기가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재정경제원 관계자도 『당시 산업채권은 두달간 1천1백억원어치가 팔렸으나 기대치에 훨씬 못미쳤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채업자 B씨는 『실명제가 무서워 전주들이 장롱속에 돈을 숨겨놓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대부분이 차명형태로 실명전환돼 금융기관을 드나들고 있다. 분리과세나 비과세저축 등을 통해 종합과세 부담없이도 얼마든지 돈을 굴릴 수 있기 때문에 더이상 햇볕을 봐야할 지하자금이란 얼마 안된다』고 말했다. 재경원이 작년말 현재 파악한 실명전환율은 98%에 이르며 실명전환이 안된 통장은 3조2천억원 정도다. 재경원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을 통해 이들 통장잔액을 조사한 결과 억대가 넘어가는 거액자금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모 투자금융사 관계자는 『실명제 실시 직후 20억원을 가진 사람이 실명전환을 의뢰해왔다. 30명의 이름을 빌려 차명으로 전환한 뒤 「가공의 차명자」들이 실제 전주로부터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처럼 하여 시차를 둬가며 전주에게 돈을 되돌리는 방식으로 실명전환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전주들은 이런 식으로 실명전환한 돈을 주식이나 부동산, 각종 비과세 분리과세 저축상품 등에 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채업자 C씨는 『전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5월부터 부과하는 금융종합과세 부과를 연기하든지 세율인하나 과세한도인상으로 종합과세 그물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금융종합과세는 손대지 않고 자금출처조사만 면제해준다는 식으로 실명제를 보완해봐야 매력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의 실명제보완은 정작 수혜자인 전주들에게 별 영향도 못미치면서 개혁후퇴라는 부정적 이미지만 남길 공산이 크다는 지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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