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賢眞기자] 『경영방식을 컨설팅업체와 상의하려는데 어디가 좋죠』(A씨)
『제 경험으론 컨설팅이 괜찮던데요』(B씨)
『자동화 소프트웨어가 필요한데 외국산밖엔 없나요』(C씨)
『아닙니다. 바로 우리회사에서 개발하고 있어요』(D씨)
지난 23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 8명의 중소기업 사장들이 모여 각자의 애로를 털어놓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량기술을 가진 중소업체 경영자들이 친구처럼 만나는 「기우회(技友會)」의 정기모임이다.
이들은 전문영역에서 각자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 기업경영의 시너지효과를 최대한 높여보자는 취지로 모였다. 오늘의 「복합기술시대」를 헤쳐가려면 아무리 전문가라도 혼자 힘으로는 안되며 고도기술을 여럿 꿰어야만 된다는 원리를 이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불황과 파업으로 어려운 경제현실에서 이 모임은 더욱 빛이 난다.
기우회는 회원이 11명으로 소규모인데다 소프트웨어 기계제작 컴퓨터부품제조 등 각자 사업영역이 다르다는 것이 특징. 덕분에 쓸데없이 경쟁할 필요도 없다.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의 정보를 이곳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들은 친목을 위한 술자리나 골프회동은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른 회원들이 해결법을 들려주는데 시간을 거의 다 쓴다.
모임을 통해 각자 얻는 소득은 예상보다 컸다. 자동제어기기를 생산하는 기인시스템의 李起元(이기원)사장은 국내제품이 없는 줄 알고 그동안 관련소프트웨어를 외국에서 수입해다 썼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 우연히 말을 꺼냈다가 회원인 중앙소프트웨어의 崔慶珠(최경주)사장이 이 제품을 개발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구입해 쓰기로 해 현재 계약 일보직전에 와있다.
멀티비전시스템을 생산하는 시공테크의 朴基錫(박기석)사장은 엔터테인먼트 로봇의 기능을 높이기 위한 기술을 찾아 1년동안 고민하다가 이곳에서 기인시스템의 도움으로 완전히 해결했다.
박사장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회원들에게 연락을 하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추천해주기 때문에 이만저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폐아스팔트 재생기를 만드는 ㈜한국아스텐엔지니어링의 文在植(문재식)사장도 최근 회사에 정보시스템을 깔기위해 준비하면서 회원들에게 기술적 자문을 받고 있다.
기우회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95년5월. 신용보증기금 강남지점장인 河淳賢(하순현)씨가 산파역할을 했다. 기술신보에서 우량기업으로 선정된 10개 업체에 모임을 해보라고 권했던 것.
하씨는 『정부가 주도하는 모임은 회원도 많고 형식적인 만남으로 끝나기 쉽지만 이런 소규모 민간모임은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대로 모임은 잘 굴러갔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수시로 전화연락을 해가며 경영기법을 주고받거나 해외의 최신 기술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공동광고를 해보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다음달 모임부터는 회원업체의 생산 개발현장을 견학하고 토론을 가질 예정이다.
이 모임 회장인 이기원사장은 『앞으로는 복합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추세라서 중소업체가 독자적으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무리』라며 『모임을 계속하면서 공동 해외진출과 공동 마케팅 등을 모색해 함께 커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