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옹벽에서 굴러떨어져 크게 다쳤다. 몸을 다쳤지만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누나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것처럼 꾸며 보험금을 타내자고. 유튜브와 블로그, 인터넷 카페를 뒤져 관련 정보를 모으는 누나에게선 기이한 생기가 감돈다.
보험사 잠복 조사관에게 장애를 증명하기 위해 남매는 불편한 몸을 ‘전시’하기 시작한다. 누나는 한쪽 팔이 성치 않은 몸으로 동생의 휠체어를 밀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한 팔로 휠체어의 무게를 버티느라 숨을 헐떡이는 모습은 섬뜩할 지경이다.
지난달 24일 출간된 앤솔러지 소설집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창비)의 첫 작품인 편혜영의 ‘재배의 경제’ 속 장면이다. 편혜영, 최진영, 정한아, 정보라, 예소연 등 다섯 여성 작가가 참여한 이 소설집에는 어딘가 ‘미쳐 보이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뒤틀려 있고 위태롭다.
하지만 책은 제목 그대로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개인이 본래부터 광기 어린 존재였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회와 구조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가령 편 작가의 소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몸은 어디까지 자원이 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소설 뒤에 실린 작가 노트는 작품의 문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편 작가는 “삶으로부터 도망치려다 주저앉고 마는 여자들, 인생에 별로 바란 게 없는데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은 여자들 이야기는 언제나 내가 겪는 가장 슬픈 이야기”라고 했다. ‘부서지는 여자’를 쓴 정보라 작가는 “억압이 사람의 마음을 부순다. 그런 세상이 여자를 미치게 만든다”고 썼다. 결국 이 소설집이 말하는 것은 ‘미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세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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