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작은 마을. 평생 글을 모르고 자식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던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손 글씨로 삐뚤삐뚤 적은 시는 꾸밈없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과 책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칠곡 할매 시인들의 이야기가 무대 위 뮤지컬로 돌아왔다.
15일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할머니 4명의 사연을 풀어내며 전개된다. “우리 손주 책을 가져다/읽어 달라고 하니 무서워 죽겠다”(닭)는 가사처럼 글을 몰라 서러웠던 기억을 승화시키거나, “우리 어매 딸 셋 낳아/분하다고 지은 내 이름”(내 이름 이분한)처럼 여성이라서 학교도 못 가고 글도 못 배운 사연을 털어놓는다.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을 록 음악을 연상케 하는 매콤한 음악(‘화상’)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출연 배우들이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2026.05.19 뉴시스뮤지컬 대본을 쓴 김하진 작가는 19일 프레스콜에서 “원래 가사를 쓰면 포장하고 가공해야 하는데, 할머니들 시는 툭 던진 몇 줄의 말만으로도 읽는 사람을 뭉클하게 만들어 가사를 쓰는 데 막힘이 없었다”고 했다.
칠곡 사투리의 독특한 ‘말맛’을 그대로 살린 점도 감상 포인트다. 표준어가 아니라 사투리 발음을 그대로 살린 시처럼, 배우들의 억양과 발음도 그 뉘앙스를 살렸다. 경상도가 고향이 아닌 배우들은 “대본에 악보를 그리듯 소리의 높낮이를 표시해 가며 연습하고 평소에도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할매들의 진한 우정과 유쾌한 경상도 사투리에 음악과 춤이 즐거움을 더한다. 하지만 진짜 진한 감동은 ‘꿈’이란 단어에서 온다. 일흔이 넘으신 칠곡 할매들이 새로운 걸 배우려 노력하고, 글을 배워 자기 이야기를 풀어냈듯 나이가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간다. 노년의 삶 속에서 새로운 ‘설렘’을 발견하는 여정은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출연 배우들이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2026.05.19 뉴시스양춘심 역을 맡은 박채원 배우는 “극 중 춘심 할매가 90세가 다 되어 ‘내 꿈은 가수였다’고 노래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눈물이 나서 목이 메는 경우가 많다”며 “30, 40대만 되어도 꿈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내 꿈은 뭐였지?’하고 돌아보는 장면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같은 역을 연기하는 차청화 배우는 “연기하는 내내 돌아가신 할머니, 외할머니와 살아 계신 시할머니가 떠올라 대사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다”며 “자신을 버리고 자식들 키우느라 희생하며 살아오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평온하게 살고 있으니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오경택 연출은 “다큐멘터리나 책과 달리 무대 공연은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호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네 할머니의 스토리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손뼉을 쳐주시는데, 공연에서 중간 박수가 가장 많이 나오는 작품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의 인생과 시간의 힘이 고스란히 담긴 진정성이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6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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