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전공자가 쓴 SF… 문학의 또 다른 미래[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 동아일보

◇대각선 논법/박건률 이후영 김정수 지음/239쪽·1만7000원·은행나무

‘대각선 논법’은 2025년 포스텍SF어워드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들을 모은 수상 작품집이다. 포스텍SF어워드는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포스텍에서 단편 작품만 심사해 진행하는 공상과학문학(SF)상이다. 필자는 2020년 말 제1회 포스텍SF어워드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과학 전공자의 SF는 확실히 과학기술적 개념의 정밀함과 깊이가 남달라서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올해에도 수상 작품들은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표제작이며 대상 수상작인 박건률 작가의 ‘대각선 논법’은 선과 악, 영원과 무한, 그리고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루키아, 휘, 연은 물리학자다. 루키아와 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FL물리학상을 놓고 경쟁한다. 상은 결국 루키아에게 돌아가는데, 루키아는 사실 사라진 또 다른 연구자 ‘연’을 찾고 있다. ‘연’은 어린 시절부터 인간 인식의 주관성과 객관적 현실의 검증 불가능성에 절망하여 철학과 신학에 천착한 인물이다.

정보라 소설가
정보라 소설가
‘대각선 논법’은 루키아, 휘, 연의 인생 행보를 중심으로 전기(傳記) 형식을 빌려 전개된다. 그러나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인간의 삶이 아니라 인간이 절대로 닿을 수 없는 한계와 그 너머를 향해 손을 뻗고자 하는 실존적 열망이다. 읽으면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연상됐다. 단편에서 끝나기보다는 박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장편으로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우수상 수상작 중 이후영 작가의 ‘감정의 땅’은 로봇, 우주선, 행성 개발이라는 익숙한 SF적 소재들을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작품이다. ‘양산 인간’ 즉 일종의 복제인간인 주인공 니므롯은 새로운 행성에 착륙하지만, ‘자연 인간’ 즉 지배층인 인간들이 모두 죽은 것을 발견한다. 니므롯은 우주선의 인공 자아 R.A.를 동료 삼아 낯선 행성을 탐험한다. 제목대로 이 낯선 행성은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복제된 인간과 감정을 조종하는 행성이라는 소재에서 폴란드 SF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 작가는 여기에 니므롯과 R.A.의 유머러스한 대화를 넣어 행성을 탐험하는 모험을 묘사하고, ‘양산 인간’ 대 ‘수혜자’인 ‘자연 인간’으로 구분되는 작품 속 사회 체제를 여러 형식의 텍스트를 삽입하여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자신의 수명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무를 수행하는 니므롯이라는 인물이 인상적이다. ‘감정의 땅’ 역시 단편으로 끝나기엔 아까운 작품이라서, ‘행성탐험인간실존모험SF’로 확대해 주시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혼자 기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최우수상 수상작인 김정수 작가의 ‘확률적 유령의 유언’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무한히 발전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는 유언장 없이 사망한 사람을 생성형 AI로 되살려 ‘사후 유언’을 받는 제도가 있다. 그렇게 ‘되살아난’ 곽규필은 자신을 살해한 범인을 찾고자 한다. 곽규필을 살해한 사람은 세 딸 중 어느 쪽인가, 혼외자인 아들인가, 아니면 동료나 친구인가? 김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오마주하며 가부장제와 인간의 욕심, 코피노 문제, 가족 드라마를 SF 추리물의 형태로 완성시킨다.

책에는 작가노트, 평론가와 작가의 대화, 심사평까지 실려 있어 SF 공모전을 준비하는 지망생에게 작법과 심사 기준에 대한 안내서 역할도 한다.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과학 전공자의 SF란 어떤 것인지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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