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씨앗에서 흙으로… 700년 나무의 생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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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삶과 죽음의 이야기/데이비드 스즈키, 웨인 그레이디 지음·이한중 옮김/296쪽·1만7500원·더 와이즈

세계적인 유전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는 ‘더글러스 퍼’ 종(種) 나무 한 그루가 작은 씨앗에서부터 700년을 살다가 흙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책에 담았다. 나무의 생애에는 모든 생명체의 생애가 압축돼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가 나무에 매료된 것은 자신의 오두막 근처에서 높이가 50m, 둘레가 5m쯤 되는 거대한 더글러스 퍼 한 그루를 발견하고 나서부터다. 크기로 볼 때 400년쯤 되었으니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쓰기 시작할 무렵 생을 시작했고, 아이작 뉴턴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을 때 처음 싹을 틔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저자는 나무 한 그루의 역사를 통해 다른 시대, 다른 세계와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나무의 일생을 ‘탄생, 뿌리 내리기, 성장, 성숙, 죽음’ 다섯 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숲속 생명의 시작은 불이다. 세계의 숲은 200∼300년에 한 번꼴로 엄청난 규모의 불이 난다. 그보다 작은 지표면 화재는 30년에 두 번꼴이다. 죽은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흙에 양분을 제공하려는 자연의 섭리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거대한 더글러스 퍼 나무는 산불에 타지 않도록 두꺼운 껍질을 진화시켰다. 화재로 건조해진 더글러스 퍼 나무의 열매는 산불이 끝나면 껍질을 열고 씨앗을 날려 보낸다. 수많은 씨앗 중 소수만이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더글러스 퍼 씨앗은 다양한 숲 생명체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다. 저자의 더글러스 퍼 나무가 15살 무렵이었던 중세 말, 세상은 식물의 쓰임새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나가고 있었다. 성당에 돌 아치 대신 나무 들보가 들어갔고, 가죽 의복 대신 식물을 가공한 리넨 옷이 만들어졌다. 나무는 이런 시간을 거쳐 점점 나이 들어간다. 진균과 곤충의 공격을 더 이상 막아내지 못하는 나무는 고사목이 된다. 바닥에 쓰러진 거대한 나무는 완전히 흙이 돼 없어질 때까지 숲 생명체의 먹이가 되어 자연에 또다시 기여한다. 저자는 이것이 “모든 생명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와 닮았다”고 강조한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700년#나무의 생애#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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