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위 동반자 20년, 가장 아끼는 작품이 이별공연됐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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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간판 스타’ 강미선-손유희 수석무용수
‘코리아 이모션 정’ 16일부터 공연… 마지막 호흡 맞춘뒤 다른 길로
혹독한 연습 함께하며 서로 의지
“덤덤한 마음으로 무대 오를래요”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손유희 씨(왼쪽)와 강미선 씨는 학창 시절 익혀둔 한국무용이 ‘코리아 이모션 정’을 준비하는 데 
보탬이 됐다고 했다. “한국무용도 제법 했다”는 두 사람은 전공을 발레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발레 할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손유희 씨(왼쪽)와 강미선 씨는 학창 시절 익혀둔 한국무용이 ‘코리아 이모션 정’을 준비하는 데 보탬이 됐다고 했다. “한국무용도 제법 했다”는 두 사람은 전공을 발레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발레 할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년 전, 될성부른 떡잎으로 만난 두 발레리나는 인생의 절반을 서로 의지하며 무성한 나무가 됐다. 같은 배역을 번갈아 퐁당퐁당 연기하던 20대 시절, 연습이 유난히 혹독했던 날엔 밤하늘에 대고 한탄하며 맥주잔을 부딪쳤다. 각자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뒤엔 “너희 딸 타고난 춤꾼이야” 하며 수다를 떨다가도 발가락이 문드러지도록 춤추며 변치 않는 기량을 뽐냈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두 수석무용수 강미선(41)과 손유희(40)의 이야기다.

UBC의 두 ‘간판 스타’가 16∼18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코리아 이모션 정(情)’에서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춘다. 손 씨는 이번 무대를 끝으로 현역 무용수에서 은퇴하고 후학 양성의 길을 걷는다. ‘코리아 이모션’은 클래식 발레에 한국무용을 접목한 창작발레로 정과 한(恨) 등 한국적 감정을 표현한 9편의 짧은 춤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강 씨에게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한국 무용수 사상 5번째로 안겨준 작품이다. 7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일곱 살에 발레를 시작한 베테랑 무용수들이지만 ‘코리아 이모션’은 “조금도 안주할 수 없는” 무대다. 발레는 동작이 무용수의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것과 달리 한국무용은 주로 안쪽을 향한다. 손 씨는 “등은 굽고 골반은 여는 식의 꼬인 동작을 하니 몸이 아프기 일쑤”라며 “여성 4인무인 ‘달빛 유희’는 큰 동작 없이 잔잔하게 8분을 추는데도 모두 숨을 헉헉 몰아쉰다. 뻗어내는 동작 없이 호흡을 끌어올리기만 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역경은 끌림을 줬다. 강 씨는 “그리움 등 정서를 서사 없이 표현해야 해 까다롭지만 어떻게 표현력을 극대화할지 고민하는 재미가 크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입단한 두 사람은 서로 보고 배우며 ‘엄마 발레리나’까지 함께 성장했다. 손 씨는 “2004년 입단 전부터 미선 언니가 엄청나다는 소문을 듣고 오래도록 지켜봤다. 나처럼 춤만 추면 싱글벙글 웃는 여섯 살배기 딸이 난생처음 본 발레리나도 미선 언니”라며 “‘코리아 이모션’은 몸 상태와 심경에 따라 매일 달리 표현돼 고민인데 언니는 그마저 컨트롤한다”고 했다. 강 씨는 “나와 달리 유희는 억지로 힘을 쓰지 않고도 발끝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강렬하다. 특히 ‘미리내길’을 출 땐 보는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고 추켜세웠다.

‘미리내길’은 이 공연의 백미이자 두 사람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푸른 달빛 아래, 지평권이 작곡한 동명 노래에 맞춰 죽은 남편을 향한 아내의 마음을 그리는 남녀 2인무다. 인생의 질곡을 거치고서야 새겨지는 한의 정서는 두 사람의 연륜으로 물감처럼 풀려나온다. 강 씨는 “사방을 둘러보는 동작이 있는데, 밖이 아니라 거울로 나를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춘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에도 춤을 놓지 않던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이어 손 씨는 이렇게 말했다.

“‘미리내길’만 추면 이성을 잃을 듯 빠져들어요. 살면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 차가운 병상에 실려 수술실에 출산하러 들어가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나 홀로 세상과 맞서야 했던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만큼 표현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각각 고별 무대, 트로피를 쥐여준 무대라는 중압감이 있지만 두 사람은 “긴장되기보단 설렌다”고 입을 모았다. 손 씨는 “최대한 덤덤한 마음으로 오르려 노력 중”이라며 “앞으로의 인생에도 발레가 함께할 것이기에 ‘완전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강 씨는 차분한 미소로 이처럼 말했다.

“올해 첫 작품으로 다름 아닌 ‘코리아 이모션’ 무대에 올라 행복해요. 작년에 못 보신 분들, 이미 보신 분들도 와주실 거란 기대도 있고요. 저번과 또 다른 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유니버설발레단#간판 스타#강미선#손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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