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환대 그리고 공감… 내게 서울은 참 따뜻했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1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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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던 의사 생활-남편의 폭력
상처투성이였던 美 이민 2세의
다시 찾아온 서울에서 치유받다
◇아메리칸 서울/헬레나 로 지음·우아름 옮김/328쪽·1만6800원·마음산책

이민자 2세대로 타국에서 겪은 인종차별, 폭력적인 남편과의 이혼,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의 자살 기도, 질투로 인한 자매간의 불화. 어느 것 하나 남들에게 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얘기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끔찍한 일을 겪으면 더 단단해지고, 그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며 자신의 삶을 담담히 고백해 나간다.

미국에서 자란 한인 2세대 여성인 저자가 평생 겪어야 했던 문화 충돌과 소외감, 혼란, 갈등 그리고 이를 극복해 가는 여정을 담았다. 그는 미국의 의대에서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하며 겉으로 보기엔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실제 그의 삶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 인해 고통과 상처로 얼룩졌고, 그는 이를 기록했다.

애초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네 자매 중 가장 총명했던 저자에게 의사가 돼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고,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저자는 영문과 대신 의대로 진학했다. 의사가 돼서도 아시아계 여성 의사를 향한 동료와 환자들의 불신과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근무 시간을 협의하려 하자 병원장은 월급을 터무니없이 깎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후 저자는 의사직을 그만뒀다.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일삼던 남편과의 이혼 소송은 장장 8년에 걸쳐 진행됐다. 자매들은 “네가 너무 너밖에 모르니까 그 사람이 떠나지”라고 했고,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갔다.

변화는 홀로 서기를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본인이 정말 원했던 글쓰기를 위해 자신이 교수로 일했던 대학에 학부생으로 입학해 마흔이 넘는 나이에 논픽션 전공 석사까지 거치며 인생의 경로를 새로 개척해간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 한국을 찾는다. 서울에서 만난 이모로부터 부모가 미국으로 이민 가게 된 계기를 전해 듣고, 친척들로부터 질책과 강요가 아닌 환대와 공감을 받으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눈을 뜨고 새로운 삶을 다짐한다.

부정적인 인생의 기억과 경험을 스스로 치유해가고, 극복해가는 노력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저마다의 상처가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위로받고, 따뜻한 울림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아메리칸 서울#이민 2세#다시 찾아온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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