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현장.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제공
‘절반의 정상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 19) 이후 3년 만에 재개된 야외 음악 페스티벌은 이 한 단어로 요약된다. 온라인으로 열리거나 개최가 취소됐던 야외 음악 축제들은 3년 만에 관객들을 만났지만 ‘라인업’은 예전만하지 못했다는 관객들의 아쉬움이 컸다. 운영비 축소에 더해 팬데믹으로 축제 개최가 뒤늦게 확정되면서 촉박하게 해외 뮤지션들을 섭외해야 했기 때문. 야외 음악 축제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몰려 관객 수는 예년 수준을 회복했지만 아티스트 라인업이나 예산이 팬데믹 전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19년엔 스팅, 올해는 앤 마리
2019년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9’ 무대에 선 영국의 전설적인 가수 스팅. 프라이빗커브 제공 이달 8~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22’(슬라슬라 2022)은 라인업이 소박해졌다. 2019년에는 헤드라이너가 ‘잉글리시맨 인 뉴욕’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 등 숱한 명곡을 만들며 그래미상을 17번 수상한 영국 가수 스팅이었다. 올해 헤드라이너는 레이니, 앤 마리, 그리고 라우브. 이들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팝가수지만 스팅에 필적할 만한 ‘레전드급’ 뮤지션은 없었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한 페스티벌 관계자는 “스팅 한 명의 섭외비가 올해 초청된 가수들을 다 합친 섭외비보다 비쌌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달 1, 2일 강원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해외 뮤지션 수도 대폭 축소됐다. 23개 팀 중 해외 팀은 HYBS, 스타크롤러 등 일곱 팀에 불과했다. 2019년엔 30여 개 팀이 참여했고, 일본, 영국, 프랑스, 태국, 헝가리 등 세계 각국에서 방문한 해외 아티스트가 14개 팀에 달했다. 3년 사이 절반 수준으로 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8월 5~7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을 찾은 관객들. 역대 최다인 13만 명이 페스티벌을 즐겼다. 펜타포트 제공 8월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국내 최대 음악 축제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펜타포트)은 역대 최다인 13만여 명이 찾았지만 해외 아티스트 라인업은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페스티벌이 열린 3일 중 이틀의 헤드라이너는 한국 밴드인 넬과 자우림이었고, 해외 헤드라이너였던 뱀파이어 위캔드도 기존 펜타포트 헤드라이너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2019년 헤드라이너는 그래미 최우수 뮤직비디오상 후보자였던 위저를 비롯해 프레이, 코넬리우스 등 모두 해외 아티스트였다.
●촉박한 섭외 일정, 예산 축소가 발목
2019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새소년의 황소윤(왼쪽)과 합동공연을 펼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원년 멤버 존 케일.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제공 코로나 19로 인한 촉박한 섭외 일정이 발목을 잡았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경우 1995년 미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 전설적인 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글렌 매트록을 섭외하려 했으나 촉박한 일정 탓에 내한이 무산됐다. 김미소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총감독은 “레전드급 아티스트는 최소 1년 전부터 섭외를 해야 하는데 코로나 19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어서 페스티벌 재개 결정이 8월에야 났다. 그 때 연락했을 때 일정이 맞는 해외 뮤지션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페스티벌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형 아티스트는 보통 일본, 한국, 홍콩, 싱가폴 등 아시아 국가들 공연을 한꺼번에 진행한다. 이 때문에 아시아 페스티벌들은 해외 아티스트를 연계해 섭외를 하기도 한다. 예컨대 2019년 펜타포트 헤드라이너였던 위저나 투 도어 시네마 클럽은 일본 최대 록 페스티벌인 서머소닉에도 출연했다.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일본 서머소닉이나 후지 록 페스티벌이 예년 수준의 해외 라인업을 회복하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달 8~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22’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선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 ‘2002’ ‘차오 아디오스’ ‘Friends’ 등의 곡으로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페스티벌을 주로 찾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티켓파워가 있는 팝 가수 위주로 라인업이 꾸려지는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페스티벌들이 3년 간 내지 못했던 수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음악성은 높지만 국내 인지도는 떨어지는 아티스트보다, 국내 음원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한, ‘트렌디한’ 가수들을 초청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꾼 것. 슬라슬라 2022를 기획한 프라이빗커브 관계자는 “3년 동안의 공연 수익이 없었던 데다 코로나 19 영향으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해외 아티스트 섭외비가 치솟았다“며 ”올해는 젊은층에게 좀 더 티켓파워가 있는 팝 가수들로 라인업을 꾸렸다. 젊은 세대는 오히려 스팅보다 앤 마리에 더 익숙하다. 티켓 수익은 2019년보다 올해가 더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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