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그 모든 걸 가능케 한 것… “깡, 응집력, 고집”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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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반도체 전쟁/허문명 지음/456쪽·2만6000원·동아일보사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일본 업체들이 TV, 냉장고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집적회로(IC) 물량과 가격을 통제하며 횡포를 부리자 자체 반도체 사업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습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신동아 2005년 10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이 회장은 “당시 미국, 일본에서는 이미 반도체 산업을 대표적인 미래 하이테크 사업으로 보고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었다”며 “10년 남짓한 기술 격차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베테랑 현직 기자인 저자는 지난해 10월 출간한 ‘경제사상가 이건희’(동아일보사)에서 인간 이건희의 다양한 측면을 입체적으로 포착했다. 신간에선 고인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이유와 과정을 촘촘히 파고든다. 고인이 생전 “망할 뻔했다”고 했던 반도체 전쟁사를 폭넓게 다룬다.

삼성은 1977년 국내 최초의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의 지분을 100% 인수했지만 제대로 된 실적을 내지 못했다. 이 전 회장이 “일본, 미국을 직접 다니면서 반도체 기술자들을 만나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사정하는 ‘기술 보따리 장사’를 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인은 꾸준한 투자를 통해 반도체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다. 1983년 최첨단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뒤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세웠다. 1986년엔 1M(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다. 1990년대 개인용 컴퓨터(PC) 열풍이 불었고, 1995년 3조5000억 원의 이익을 내면서 고인의 고집은 대성공을 거둔다.

삼성 전직 임원들은 이 전 회장의 ‘자율’과 ‘위임’ 리더십을 성공 비결로 꼽는다. “회장의 키워드는 ‘깡, 응집력, 고집, 용기, 겁 없음’”(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체어맨 리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는 평가를 보면 고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이달 25일은 고인의 2주기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위세가 거센 요즘, 고인의 도전정신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는 건 어떨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꾸준한 투자#반도체 신화#故이건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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