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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승전고 울려퍼지던 이순신의 섬…바다 위 城엔 평화의 파도 출렁 [전승훈의 아트로드]

입력 2022-08-20 03:00업데이트 2022-08-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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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한산도
확실한 승리를 만드는 집 제승당
적 살피던 수루와 활 쏘던 한산정
한려해상에 뿌려진 섬들의 파노라마
이순신 장군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경남 통영시 한산도의 제승당 입구에 펼쳐진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관암(오른쪽)과 문어포 사이로 통영항에서 들어오는 뱃길이 보인다.
《경남 통영시 육지에서 2km 정도 남동쪽으로 가면 한산도에 도착한다. 배 위에 서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풍경이 펼쳐지고 영화 ‘한산’에 나온 임진왜란 한산대첩 격전의 현장도 감상할 수 있다. 거제대교 밑 견내량의 좁은 해협을 빠져나온 바닷물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출렁거린다. 한산도를 비롯해 미륵도, 화도, 거제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360도로 빙 둘러싸고 있다. 1592년 7월 충무공 이순신이 좌우로 날개를 활짝 펼친 학익진(鶴翼陣) 전법으로 ‘바다 위에 성(城)’을 쌓고 73척의 왜군 함대를 격파한 바로 그 현장이다.》

○ ‘승리를 만들어내는 집’ 제승당

통영에서 배로 30분 만에 한산도에 도착하니 제승당(制勝堂)으로 가는 팻말이 보였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 이후 삼도수군통제 본부로 삼은 곳이다. 둥그렇게 만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닷물이 잔잔한 호수처럼 보이는 이곳은 바로 천혜의 요새임을 알게 해준다. 아름드리 적송이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로 약 1km의 해변길을 걸으면 제승당에 도착한다.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에 복원된 운주당.
대첩문과 충무문을 지나니 ‘제승당’이 나타난다. 이곳은 이순신의 집무실(숙소)이자 작전지휘소였던 ‘운주당(運籌堂)’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은 선조 26년(1593년)부터 한양으로 압송돼 갔던 해인 선조 30년(1597년)까지 3년 8개월 동안 이곳에서 주둔했다. 1491일 동안의 일을 기록한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중 1029일의 일기가 쓰인 곳이기도 하다.

운주당, 제승당은 모두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운주당의 ‘주(籌)’는 주판(籌板)에 쓰이는 글자로, 셈을 할 때 쓰는 산가지를 뜻한다. 요즘으로 치면 최첨단 컴퓨터를 운용하며 전략 시뮬레이션을 하는 방인 셈이다. 직관적인 감이 아니라 바람과 조류, 무기체계까지 철저한 계산을 통해 짜내는 작전 지휘소인 셈이다. 이순신은 운주당에서 계급장과 상관없이 어떤 하급 병사도 찾아와 의견을 내고 토론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영화 ‘한산’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55척의 함선 지휘관의 무력과 심성까지 세밀하게 살펴서 좌우 날개에 세우는 학익진을 완성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는 장면이 나온다.

제승당은 말 그대로 ‘승리를 만들어내는 집’이다. 영어 해설문에는 ‘the place where victory is made’라고 쓰여 있다. 이순신의 사전에는 ‘싸워서 이긴다’는 법은 없었다. ‘싸우기 전에 먼저 확실히 이겨놓고’ 싸웠다. 이는 손자병법의 첫 번째인 ‘시계(始計)’ 병법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요, 싸워야 한다면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국가와 민초들의 삶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난 다음에 이기는 승리는 애민(愛民)주의자 이순신의 머릿속에 없었다. 그러나 운주당의 ‘소통의 문화’는 이순신이 파직된 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에 의해 변질됐다. “원균은 애첩을 데리고 운주당에 살면서 울타리를 두 겹으로 막아 놓아 장수들도 그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는 또 술을 좋아해 날마다 술주정을 하고 화를 냈으며, 형벌을 내리는 데도 일정한 법도가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왜적을 만나면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서로 하면서 수군거렸다.”(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결국 원균은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해 160척의 조선 수군 함선의 대부분과 숙련된 군사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한산도의 운주당도 폐허가 됐다. 이순신은 남은 12척의 배를 가지고 다시 싸움을 이어 나간다. 영조 15년(1739년)에 통제사 조경은 한산도에 다시 제승당을 세웠다.
○바다를 건너는 활터
이순신 장군이 왜적의 동태를 살펴보던 제승당의 수루.
제승당 근처에는 이순신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오르던 수루(戍樓)도 복원돼 있다. 수루는 물가에 세운 누각(水樓)이 아니다. 군대가 주둔하는 수자리(병영)에서 적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세운 망대다. 수루에 올라 보니 관암과 문어포 사이로 한산도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지금은 평온하지만 이순신에게는 애끓는 바다였을 것이다.

“맑음. 늦게 가리포, 금갑, 남도, 사도, 여도가 보러 왔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이날 밤 바람은 몹시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이 낮과 같아 잠에 들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밀었다.”(난중일기, 1595년 10월 20일)

한산정 활터에 있는 바다를 건너 화살을 쏘아서 맞히는 과녁.
제승당 아래쪽에는 ‘한산정’이라는 활쏘기 훈련장이 있다. 이순신이 부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정자에서 쏜 화살은 바다를 건너 약 150m 거리에 있는 과녁에 맞히도록 돼 있다. 요즘 한국의 양궁 국가대표팀이 야구장에서 소음 적응 훈련을 하듯이 이순신은 해전에 필요한 실전 적응 훈련을 하기 위해 바닷물을 건너는 활터를 만들었던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이순신의 멋진 활 솜씨를 보고 난 후라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병장기를 씻는 곳이라는 뜻의 세병관.
통영 시내에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에도 이순신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통제영에 있는 가장 큰 건물인 ‘세병관(洗兵館)’은 전쟁이 끝나고 피 묻은 칼과 창, 활, 갑옷과 같은 병장기를 씻는다는 의미다.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은하수 물을 끌어다가, 갑옷과 무기를 깨끗이 씻어 영원히 사용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시인 두보의 ‘세병마행(洗兵馬行)’에서 따온 말로 평화를 염원하는 뜻이다.

세병관 주변에 있는 ‘지과문(止戈門·전쟁을 그치게 하는 문)’, ‘괘궁정(掛弓亭·활을 걸어두는 정자)’도 평화를 염원하는 글귀다. 위대한 무인은 전쟁을 그치게 하는 사람이다. 또한 녹슬고 무디어진 병장기를 잘 씻고, 닦고, 훈련하며 평소에 안보에 대비해야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현판이기도 하다.
○미역이 춤을 추는 매물도, 홍도
괭이갈매기의 서식지이자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홍도.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매물도로 가는 뱃길에서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섬들을 구경할 수 있다. 두 개의 섬이 사구로 연결된 비진도를 지난 배는 소지도, 소매물도, 등대섬을 보여준 뒤 1시간 반 만에 매물도에 도착한다. 대항항 앞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세 선녀가 물 위에서 노니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삼녀도가 그림처럼 떠 있다.

매물도와 소매물도는 트레킹과 낚시, 다이빙으로 유명한 섬이다. 가장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는 매물도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리는 홍도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의 홍도와 이름이 같은 통영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제335호)로 지정돼 있다. 무인도인 홍도는 깎아지른 절벽에 살고 있는 수많은 괭이갈매기가 섬의 주인이다.

매물도와 홍도에서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다이빙을 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니 청줄돔이 서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며 사랑놀이를 하고, 숲처럼 우거진 미역과 감태, 다시마 사이로 수백 마리의 자리돔 떼가 헤엄친다. 한산대첩에서 패한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조선 수군의 추격을 피해 인근 무인도에 숨어서 미역을 뜯어 먹으며 열흘을 버티다가 뗏목을 만들어 간신히 탈출했다.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와키자카 집안은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날에 미역만 먹는 풍습이 이어진다고 한다. 와키자카가 숨어 있던 섬은 아니지만 한산면에 속해 있는 매물도, 홍도 바닷속에서 미역과 감태, 모자반이 우거진 모습을 보니 감회가 깊었다.


매물도에서 550m 정도 떨어져 있는 소매물도는 코발트색 청명한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해식 절벽 지형이 진경을 이룬다. 이곳의 등대섬은 1980년대에 쿠크다스 과자 CF의 배경이 돼 일명 ‘쿠크다스섬’으로 이름을 날렸다. 썰물 때면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에 열목개라 불리는 80m의 몽돌 바닷길이 열린다. 통행이 허용되는 2∼5시간 동안 탐방객들은 등대섬으로 건너가 하얀 등대와 푸른 초원 위에서 한적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글·사진 통영=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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