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여성 살해 피해자 다섯 명, 그들의 삶을 되살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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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핼리 루벤홀드 지음/오윤성 옮김/468쪽·1만8500원·북트리거

이 책의 제목 ‘더 파이브’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5명’이지만 1887년 영국 런던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 희대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에게 살해당한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을 통칭한 말이었다. 표현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사물화(事物化)됐다. 거리에서 살해당한 매춘부로 말이다.

살인사건 발생 당시 트래펄가 광장은 심한 가뭄 탓에 노숙인으로 가득 찼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없는 여성의 삶은 쉽게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제도권 안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여성들은 값싼 노동을 전전하다가 푼돈에 성(性)을 팔았다. 사람들은 광장의 여성들을 거리의 매춘부로 뭉뚱그렸다. 특히 잭 더 리퍼에게 살해돼 거리에 버려진 피해 여성들은 뚜렷한 증거 없이 ‘그저 매춘부’가 됐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저자는 이들의 구체적인 삶에 주목한다. 200여 권에 달하는 문헌을 참고해 ‘더 파이브’의 삶을 복원해낸다. 사건이 발생한 지 130여 년이 지나서야 잭 더 리퍼를 영웅시하는 이야기가 아닌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발굴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더 파이브’는 당시 수많은 여성과 비슷하게 살았지만 이례적인 죽음을 맞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목숨만 뺏긴 게 아니었다. ‘그저 매춘부’로 불림으로써 소설, 영화, 뮤지컬의 소재가 되고 상품이 됐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이 빼앗긴 존엄성을 다시 돌려받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더 파이브#여성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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