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한중 관계 600년, 냉엄한 역사의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제국과 의로운 민족/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옥창준 옮김/228쪽·2만 원·너머북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공산주의 독재체제 중국보다 일본을 더 견제하는 건 난센스다.”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민주평화론’을 지지하는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대해 늘 의문을 제기한다. 지역패권을 노리는 중국에 맞서 한국과 일본이 연대해 세력 균형을 추구하지 않는 건 현실주의 시각에서도 의아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문의 배경에는 당연히 ‘역사’라는 변수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수천 년에 걸친 중국과의 교류와 19세기 말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말이다.

전작 ‘냉전의 지구사’(에코리브르)로 세계적인 냉전사 연구자로 이름을 알린 저자는 이 책에서 한중 관계 600년을 돌아보며 양국 관계의 특수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제목에도 나오는 의(義)는 수직적 질서를 통한 바름을 추구하는 성리학 개념으로 한중 관계에서 ‘복합 주권’을 낳았다는 것. 복합 주권이란 수직적 조공 질서로 종주국에 대한 예를 강조하되, 내치(內治)에서는 철저한 자주권을 보장받았음을 뜻한다. 이는 19세기 이전까지 수백 년에 걸쳐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온 핵심 요인이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문제는 양국의 국력이 강해지고 근대 민족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이 같은 협력 체제가 작동하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북핵 위기가 이어지는 국면에서 미중 갈등마저 격화돼 한반도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북한 체제 붕괴와 같은 급변 사태에서 중국이 한반도에 전통적으로 품어온 가부장적 인식이 작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이 북-중 접경지에서 완충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 조공 질서로 절대 회귀할 수 없는 21세기 한국이 나아갈 방향은 무얼까. 저자는 중국인에 비해 청 제국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조선 엘리트들의 인식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무조건적 반중(反中) 혹은 반일(反日)을 넘어 이웃 국가들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 아닐까.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민주주의#민주평화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