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월… 세 조연이 보고 쓴 타협, 긴장, 그리고 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얄타의 딸들/캐서린 그레이스 카츠 지음·허승철 옮김/536쪽·2만8000원·책과함께

1945년 2월 얄타회담이 열린 러시아 리바디아 궁전에서 세라 처칠과 애나 루스벨트, 캐슬린 해리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부터). 연합국 수장들이 회담장에서 격론을 벌일 때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교 의전을 도맡았다. 당시 미국 노동장관 프랜시스 퍼킨스는 “이들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타인을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을 데려간다”고 기록했다. 책과함께 제공
1945년 2월 얄타회담이 열린 러시아 리바디아 궁전에서 세라 처칠과 애나 루스벨트, 캐슬린 해리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부터). 연합국 수장들이 회담장에서 격론을 벌일 때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교 의전을 도맡았다. 당시 미국 노동장관 프랜시스 퍼킨스는 “이들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타인을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을 데려간다”고 기록했다. 책과함께 제공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현대사의 세 거두가 1945년 2월 러시아 크림반도 얄타에 모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운명을 결정할 때 세 여성이 함께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애나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딸 세라, 소련 주재 미국대사 애버럴 해리먼의 딸 캐슬린이다. 아버지가 일군 거대한 역사에서 조역으로 활동한 세 딸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세 여성이 얄타회담 전후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1945년 2월 1∼11일의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이들이 남긴 글에는 회담장 안 아버지가 보지 못한 역사의 단면이 담겨 있다. 저자는 플래시백 기법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술로 세 여성의 일상과 얄타회담 전후 세계사를 촘촘히 엮어낸다.

루스벨트의 딸 애나는 당시 급성 심부전 진단을 받은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회담 일정을 조율하는 비서 역할을 맡았다. 일간지 종군기자였던 캐슬린은 격무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대신해 틈틈이 배운 러시아어로 건배사를 외친 의전 담당관이었다. 영국 공군 소속의 세라는 군사기밀을 다룬 전문가이자 처칠이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상담자였다.

이들은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회담을 지켜보며 얄타회담에 대해 송곳 평가를 내린다. 1945년 2월 11일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세 거목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회담장을 걸어 나왔지만, 애나는 남편에게 쓴 편지에서 “화려한 수사로 가득 찬 일반론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딸들이 남긴 회담장 분위기는 얄타회담이 가져올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세라가 남긴 편지에 따르면 “스탈린은 공동선언문 작성을 마치자마자 지니의 요정처럼 사라져 버렸다”. 미국 대표단마저 얄타를 떠나고 홀로 남은 처칠은 “여기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끝났다”고 소리치며 돌연 짐을 챙겼다. 예정일보다 하루 앞당겨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 처칠은 딸에게 “내 마음에서 불안이 떠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소련이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급속도로 멀어져 가고 있음을 직감한 것.
얄타회담에 참석한 연합국의 세 거두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왼쪽부터). 책과함께 제공
얄타회담에 참석한 연합국의 세 거두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왼쪽부터). 책과함께 제공

처칠의 예감대로 나치와 맞서 싸운 동지들은 곧 갈라선다. 미영소 3국이 패전국 독일을 분할 통치하기로 합의한 얄타회담은 1961년 베를린 장벽 설치로 이어진다. 세계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분열시킨 냉전의 서막이 열린 것. 훗날 얄타회담은 동유럽을 소련의 손아귀에 던져준 실패한 외교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세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은 마냥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1945년 2월 6일 정상들이 회담장에서 격론을 벌일 때 세 딸은 독일군 공습으로 폐허가 된 항구도시 세바스토폴로 향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도시에도 삶은 이어졌다. 천장 없이 벽만 남은 성당에는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비극을 겪고도 꿋꿋이 생을 이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세라는 이렇게 기록했다. “어두운 성당 안의 그들도 꿈을 가지고 있어요.”

어쩌면 세 딸이 목격한 폐허 위 성당의 불빛은 아버지가 남긴 얄타회담의 유산보다 더 빛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격변하는 세상사 속에서도 사람들은 희망을 품으며 삶을 지켜 왔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루스벨트#스탈린#처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