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지, 하와이도 파리도 아니다…‘빈민촌’으로 떠난 부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8일 14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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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김현영, 홍석남 씨 부부. 두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돕기 위해 직접 모은 후원금으로 건물을 지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김현영, 홍석남 씨 부부. 두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돕기 위해 직접 모은 후원금으로 건물을 지었다.

예비 부부가 신혼 여행지를 고른다. 뜨거운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골목 구석구석 예쁜 카페가 즐비한 프랑스 파리? 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동남아 풀빌라?

이 부부의 선택은 좀 특이했다. 인도, 아프리카, 남미를 돌아다니며 빈민촌 아이들을 위해 일하기로 했다. 5개월간의 해외 봉사활동 경험을 다룬 에세이 ‘분명히 신혼여행이라고 했다’(키효북스)를 최근 펴낸 김현영(32·여) 홍석남(38) 씨 부부 이야기다. 김 씨는 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 처음에는 둘 다 퇴사하고 세계여행만 다니려고 했다. 조금 색다른 경험으로 중간에 2주 정도만 봉사활동을 해보려고 했는데 계획이 바뀌었다”며 웃었다.

결혼 전 김 씨는 방송국 여행 리포터로, 홍 씨는 종합상사 직원으로 일했다. 특별한(?) 신혼 여행을 위해 2019년 3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두 사람은 1년의 여정을 거쳐 지난해 3월 귀국했다. “5개월간 봉사하고 7개월은 배낭여행을 했지만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른 이들을 도운 경험이네요.”

이들은 2019년 6월 인도 고아에 도착했다. 이곳은 ‘히피들의 낙원’으로 불리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차를 타고 비좁은 비포장도로를 달리자 빈민촌이 나왔다. 입구부터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쓰레기더미 옆에 아이들이 모여 살았다. 부부는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빈민들을 위한 집을 짓기도 했다. 처음엔 기쁜 마음으로 고생길을 자처했지만 2주 후 김 씨는 남편에게 “여보, 나 집에 가고 싶어”라고 털어놓았다. “인도에서 2주간 봉사활동을 한 뒤 고민에 빠졌어요. 봉사활동보다 내 행복을 위해 관광을 다니고 싶었죠.”

그때 김 씨에게 한 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조카가 아프다는 소식에 며칠을 울었다. 지금 한국에 돌아가도 조카에게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귀국해 조카를 돌볼 수 없다면 다른 공간에서 아이들을 도우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자고 다짐했다.

부부는 그해 7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보육원으로 향했다. 상황은 인도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건물에서 50여 명의 아이들이 시멘트 바닥에 앉아 공부했다. 부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꿈을 주자”는 호소에 친구들은 물론 지인의 소개를 받은 이들까지 힘을 보탰다. 그렇게 모은 700만 원으로 식량을 사고 화장실을 새로 지었다.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한글도 가르쳤다. 김 씨는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3개월간 탄자니아의 아이들을 내 조카라고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올 2월에도 2주간 페루에서 50여 명의 빈민층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내일도 올 거죠?”라고 묻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했다. 여행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자 김 씨는 차분히 답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현실에 놓인 아이들과 지내면서 삶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죠. 고생하면서 부부끼리 동지애가 생긴 건 물론이고요. 제가 살면서 했던 일들 중 가장 뿌듯하고 보람찬 일입니다. 후회하지 않아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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