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파이베이비 2집 ‘미술관’… 음반에 소리를 설계하듯 수록
물에 젖은 드럼-펜글씨 소리 등… 시각적 음향으로 독특함 더해
미술관 평면도-전시도록도 제작 “영화나 책처럼 보고 읽어주세요”
일렉트로닉 듀오 ‘로파이베이비’의 뮤직비디오. 멤버 세이(왼쪽)와 조는 “크고 웅장한 미술관을 상상하며 소리의 공간감을 만들었다”고 했다. 로파이베이비 제공
“(뚜벅… 뚜벅…) 안녕하십니까? 관람객 여러분. … 전시공간은 두 군데로 나눠져 있으며 먼저 만나보실 제1전시실에는 스크래치, 데칼코마니, 크로키, 수묵 등 4가지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 그럼, 이쪽으로 가실까요?”(첫 곡 ‘도슨트 1’)
음반을 재생하면 도슨트(미술품 안내자)의 내레이션이 고막 쪽으로 다가왔다 사라진다. 일렉트로닉 리듬앤드블루스(R&B) 듀오 ‘로파이베이비’가 최근 낸 2집 ‘미술관’(QR코드). 얼음동굴 석순처럼 스피커 양쪽으로 돋아나는 일렉트로닉 비트, 습한 양감으로 음계 위를 미끄러지는 세이의 R&B 가창. 차디참과 뜨거움을 교차시킨 앨범, 명료하고 치명적인 이율배반의 음반이다.
26일 서울 마포구의 음악작업실에서 만난 멤버 세이(SAY·본명 양서진·24), 조(ZO·본명 황현조·25)는 “앨범의 부록 격으로 가상의 미술관 평면도와 전시 도록도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디지털 음원은 지난달 발매했고, 음반(카세트테이프)과 도록 세트는 다음 달 말까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통해 판매한다.
앨범은 말 그대로 소리로 설계한 갤러리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각각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로 칭하고 수록 곡을 반씩 담았다. 노래 제목부터 아예 ‘수채’ ‘프로타주’ ‘콜라주’ 같은 미술 기법이다.
‘내게 상처를 내줘. 날 아프게 해줘/이걸 좀 봐. 이렇게 아름다워’(‘스크래치’)
‘나비의 날개를 접어버리자/어쩌면 우리에게 아름다운 건 어울리지 않아’(‘데칼코마니’)
고교 선후배인 두 사람은 2017년 의기투합했다. 서로를 “카톡 친구”라고 불렀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세이가 가사와 멜로디를 써서 메신저로 보내면 마포구의 조가 컴퓨터 편곡과 프로듀싱으로 곡을 마무리한다.
‘미술관’의 표지. 음악 앨범이지만 공감각적 콘텐츠인 셈이다. 로파이베이비 제공“세이의 가사는 대단히 시적이지만 보컬 무드는 또 너무 섹시해요. 반복해서 듣다 ‘이거 너무 야한 거 아냐?’ 할 때가 많죠.”
의도적 저음질을 뜻하는 로파이(lo-fi)를 팀명에 넣었지만 이들의 음악은 오히려 슈퍼 하이파이(hi-fi)에 가깝다. 미리 녹음해둔 것을 재생하며 폼만 잡는 여타 DJ들과 달리 쉴 새 없이 기타, 건반, 전자패드를 연주하는 조의 분주한 무대매너도 이채롭다.
“편곡할 때 스스로를 카메라라고 상상해요. 때에 따라 배경을 넓게 찍고,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카메라를 빠르게 움직여 긴박감을 나타내는 식으로 비트를 만들어가요.”(조)
미술 기법은 제목과 가사뿐 아니라 음향에도 반영했다. ‘수채’와 ‘수묵’에서는 드럼 소리를 물에 젖거나 물이 튀는 소리처럼 디자인했다. ‘크로키’에는 종이를 찢고 펜으로 거칠게 필기하는 소리를 섞었다.
곡마다 그에 어울리는 미술가에게 작품 제작도 의뢰했다. 작품은 도록에 담고 10월 중순 앨범 발표회 때 공연 겸 전시도 열 계획이다. 참여 미술가 중 4명이 타투이스트를 겸하고 있다. 이들이 스피커로 뿜는 육감적 화풍과 어울리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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