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백석은 불행했을까…김연수 “실패가 아니다 말해주고 싶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8일 10시 44분


‘일곱 해의 마지막’ 저자 김연수 작가.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일곱 해의 마지막’ 저자 김연수 작가.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소설가 김연수(50)가 8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시인들의 시인이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같은 대표작으로 여전히 사랑받는 월북시인 백석(1912~1996·본명 백기행)이 죽기 전 7년간을 소재로 한 ‘일곱 해의 마지막’(문학동네)이다.

백석은 근대 가장 주목받는 서정시인이었지만 분단 이후 북한을 택한 뒤 번역 외에 제대로 된 작품을 내지 못하다 협동농장으로 쫓겨나 생을 마친 비운의 시인이다. 불운한 시대, 부조리한 체제 속에서 언어를 빼앗기게 된 천재 시인의 쓸쓸한 행로를 작가는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워나간다. 서정이 반동이 돼 버리는 사회주의, 개인숭배와 체제 찬양 외의 창작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견뎌낸 시인의 자취가 청춘과 불안을 기록해온 김연수의 언어로 쓸쓸하고도 아름답게 빚어진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백석의 말년 이야기로 8년 만에 신작을 냈다. 취재와 고증도 많이 한 작품인데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역사소설이나 당시의 재연에는 관심이 없었고 개인적인 관심에서 출발했다. 성공해야 의미 있는 삶이라면, 이 많은 실패들은 왜 존재하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역사적으로 크게 실패했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백석 역시 그랬다. 극단으로 몰리고 실패한 이들에게 이후의 인생이 이어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당이 원하는 시를 쓰지 않아 온 가족과 양강도 삼수군으로 쫓겨 갔던 때의 백석과 같은 나이가 되고 보니 그의 실패가 어떤 것인지 이해가 갔다. 좌절한 사람들의 ‘그 이후’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백석의 비극적 삶 뒤엔 전쟁과 분단이란 아픔이 있고 체제의 부조리도 있다. 사료로 남지 않은 삶을 재구성하면서 분단사와 이념 갈등의 상처도 고민했을 것 같다.

“당시를 재구성하려니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는 너무 비참한 상황이었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모두 우울하고 곧 망할 것 같다고 생각들 하지만 전쟁이 끝난 그때는 말 그대로 종말적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참해서 어떻게 묘사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절망뿐인 상황이 불과 60년 만에 이렇게 달라진 원동력이 궁금했다. 어쩌면 생명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살아보겠다는 악착같은 힘. 물론 그럼에도 죽고 희생된 사람은 있었고 백석처럼 쓰지 못하게 된 이도 있었지만, 그들은 살아냈고 이렇게 만들어왔다. 그 힘이 체제보다 훨씬 더 길고 강했다.”

―말년의 백석은 불행했을까.

“자신의 가치와 상반되는 것을 택하는 걸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체제에 순응하는 시 외엔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절필을 선택했다고 판단한다. 당의 간섭을 받지 않는 번역시는 백석답게 여전히 너무 훌륭했다. 그는 못쓴 게 아니라 쓰지 않음을 택했다. 지금까지의 시로 남겠다는 용기다. 백석의 그 선택에서 나도 용기를 얻었다. 불행이 아니라 본다.”

―당신의 초기작이자 출세작 ‘굳빠이, 이상’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작가로서 ‘청춘 시인’ 이상을 지나 ‘국민 시인’ 백석으로 무르익어가는 여정이 아닌가 싶다.

“항상 걸리는 바가 있었는데 뭔지 잘 몰랐다. 두 시인의 삶을 보며 문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배웠다. 아무 힘도 의미도 없는 예쁜 언어를 만들어낼 뿐이란 슬픔이 있지만, 이런 문학적 위로와 즐거움을 보면 글이 무기력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격변기를 산 그들에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뇌가 있었을 게다. 거기에 비춰보면 지금의 문제에는 어느 정도 답이 보이는 것 같다.”

―시대와 체제가 다른 오늘의 독자에게 백석의 마지막 7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백석 시에는 항상 놀라운 인식의 전환이 보인다. 괴로움을 토로하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높은 천장을 보고, 굳고 정한 갈매나무 같은 존재를 본다. 그가 본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후대에 당시의 그를 들여다보는 나 같은 사람의 시선이지 않았을까. 쓰지 못하는 고통은 어마어마하다. 그 결정이 백석도 두려웠고 후회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쓰지 않음이 실패가 아님을 그의 시를 사랑하는 우리는 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빼앗긴 불행 덕분에 자신을 지켰고 우리는 그의 시를 본다. 실패 같아보여도 아니다. 독자에게도 인생에서 그런 선택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기행의 삶에 감정을 이입했을 독자에게도 말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고.”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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