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쟁이 아빠와의 토닥거림도 이젠 그리운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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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인기 만화가 마스다 미리
‘아빠라는…’‘엄마라는…’ 번역출간

만화가 마스다 미리 씨가 동아일보 독자들을 위해 보내온 캐리커처.
만화가 마스다 미리 씨가 동아일보 독자들을 위해 보내온 캐리커처.
서울 대형서점 만화코너를 밥상에 비유하면 일본 만화가 마스다 미리(51)의 책은 무생채를 닮았다. 은근한 맛으로 묵묵히 밥상 한편을 지키는 무생채. 2012년 국내에 소개된 후 그의 만화는 꾸준한 호응을 얻으며 만화코너 앞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내용도 무생채 맛이다. 미대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지내온 일상을 덤덤하게 그렸다. 저녁나절 친구와의 전화 수다를 닮은 두서없고 소박한 이야기. 큰 사건도, 긴장감 넘치는 갈등도, 멋진 주인공도 없다. 하지만 독자들은 좋아한다.

만화 ‘아빠라는 남자’와 ‘엄마라는 여자’. 비채 제공
만화 ‘아빠라는 남자’와 ‘엄마라는 여자’. 비채 제공
최근 번역된 ‘아빠라는 남자’와 ‘엄마라는 여자’(비채) 출간을 맞아 동아일보와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마스다 씨는 “2014년 서울 사인회에 초대받았을 때 ‘과연 누가 나를 만나러 올까’ 전전긍긍했다. 새벽 기차를 타고 멀리서 온 분을 포함해 많은 독자들을 만나서 굉장히 놀랐다. 지금도 가끔 돌이키는 멋진 추억”이라고 했다.

“제 만화의 주인공은 대개 인간관계에 좌절하고, 노후를 걱정하며, 사랑에 속 끓이기도 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자기가 맡은 일은 어찌 됐든 최선을 다해 해냅니다. 독자들은 이런 인물의 모습 어딘가가 자신과 가깝고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저 역시 그런 인물이기에 독자들이 만화를 좋아해주는 만큼 큰 격려를 받습니다.”

이번에 나온 두 책은 진심을 표현하는 데 서툰 무뚝뚝한 아빠, 무슨 일이 닥치든 늘 웃어넘기는 느긋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어린 딸에게 “애완동물 집을 만들어 주겠다”고 장담했다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혼자 버럭 화를 내더니 이내 “미안해 다시 해줄게” 하고 다가앉는 변덕쟁이 아빠, 아파트 앞 화단 가꾸기를 좋아해 3층 집에서 호스를 내려 물을 주는 곰살궂은 엄마의 이야기가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몇 해 전 아빠는 돌아가셨습니다. 한동안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다가 아빠가 좋아하던 것을 보면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아빠는 된장국이 뜨거우면 얼음을 넣어 드실 정도로 성미가 급했지만 늘 머리맡에 책을 둔 부지런한 독서가였어요. 미술 공부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늘 마음에 여유가 있는 엄마는 올해 77세인데 건강히 잘 지내십니다.”

퇴근길에 가족을 위해 사온 케이크를 말없이 현관 앞에 툭 놓아두던 무뚝뚝한 아빠, “여행 가자”는 남편의 말에 “혼자 다녀와요” 대꾸하지만 늘 그를 위한 야식 주먹밥을 준비하던 곰살궂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비채 제공
퇴근길에 가족을 위해 사온 케이크를 말없이 현관 앞에 툭 놓아두던 무뚝뚝한 아빠, “여행 가자”는 남편의 말에 “혼자 다녀와요” 대꾸하지만 늘 그를 위한 야식 주먹밥을 준비하던 곰살궂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비채 제공
어릴 때 자식들은 가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모의 어떤 모습에 대해 ‘나는 커서 절대 저러지 않아야지’ 생각한다. 그러다 나이가 든 뒤에 무심코 자신의 행동에서 부모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스다 씨도 “아빠가 했던 것과 똑같은 자세로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가끔 깨닫고 혼자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고 말했다.


“아빠는 ‘웃어야 원만히 넘어가겠구나’ 싶은 상황에서도 절대 억지로는 웃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아빠를 보며 ‘어른답게 융통성이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곧잘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빠가 웃었던 때는 정말 즐거운 때였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때로 사람들 앞에서 억지웃음을 지어야 할 때마다 ‘아빠라면 지금 웃지 않을 텐데…’ 생각도 들고요. 뒤늦게 깨달은 아빠의 장점이에요.”


마스다 씨는 앞으로 일상을 소재로 한 만화 작업 외에 여행 경험담을 담은 산문집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을 응원한다”며 “하루빨리 이 어려움이 종식돼 새로운 여행 에세이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일본#만화가#마스다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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