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대로 표현한 과거에 대한 경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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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DB4 GT 자가토 컨티뉴에이션에 붙은 자가토의 Z 엠블럼.
DB4 GT 자가토 컨티뉴에이션에 붙은 자가토의 Z 엠블럼.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탈리아 카로체리아(Carrozzeria·차체 디자인 및 제작 업체)는 독특한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오랫동안 자동차 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자동차 생산과 제작 방식의 변화에 따라 20세기 후반 이후로는 대부분 쇠락하고 지금은 자취를 감춘 곳도 많다. 그런 점에서 21세기에도 살아남아 꾸준히 멋진 차들을 디자인하고 있는 카로체리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외감이 담길 수밖에 없다.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은 자가토(Zagato)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우고 자가토(Ugo Zagato)가 1919년에 이탈리아 밀라노에 설립한 자가토는 지난 100년 동안 여러 자동차 업체와 함께 다양한 차를 만들어 왔다. 특히 공기역학과 알루미늄 합금을 비롯한 경량 소재를 다루는 데 능했고, 다른 카로체리아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개성을 디자인에 담았다. 그런 자가토의 특별함이 잘 어우러진 브랜드로 영국의 럭셔리 스포츠카 전문업체인 애스턴 마틴을 꼽을 수 있다. 애스턴 마틴이 자가토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을 내놓은 것도 두 회사의 끈끈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스턴 마틴과 자가토의 60년 인연을 상징하는 두 모델, DB4 GT 자가토 컨티뉴에이션(왼쪽)과 DBS GT 자가토.
애스턴 마틴과 자가토의 60년 인연을 상징하는 두 모델, DB4 GT 자가토 컨티뉴에이션(왼쪽)과 DBS GT 자가토.

애스턴 마틴과 자가토의 인연은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스턴 마틴은 1950년대에 많은 스포츠카 업체들이 그랬듯 르망 24시간 경주에 여러 차례 출전해 우승에 도전했다. 당대 르망의 강호로 손꼽히던 브랜드는 단연 페라리였고, 페라리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애스턴 마틴에게도 중요한 목표였다. 그런 노력은 1959년에 빛을 봤다. 두 대의 애스턴 마틴 경주차가 페라리를 물리치고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때 우승을 차지한 경주차를 몬 선수 중 한 명이 미국 출신인 캐롤 셸비다. 그는 최근 개봉한 영화 ‘포드v페라리’의 두 주인공 중 한 명(맷 데이먼 분)이고, 영화 초반에 셸비의 르망 우승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르망 우승으로 스포츠카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자, 당시 애스턴 마틴의 소유주였던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은 새 차의 뛰어난 성능에 걸맞은 강렬한 디자인을 접목하고 싶었다. 자가토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힘찬 분위기의 디자인에 주목한 그는 스포츠카 ‘DB4 GT’를 바탕으로 만들 경주차의 디자인을 자가토에게 맡겼다.

두 회사가 손잡고 만든 DB4 GT 자가토는 1960년에 첫선을 보이자마자 자동차 애호가들로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애스턴 마틴의 세련된 차체 비례와 독특한 분위기를 살리면서, 단순한 곡선과 곡면의 조합으로 단단하고 힘찬 느낌을 주는 자가토의 개성을 더한 이상적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판매실적은 저조해 19대만 완성된 채 생산이 중단됐다. 애스턴 마틴과 자가토의 관계를 이어갈 후속 모델은 그 뒤로도 한동안 나오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DB4 GT 자가토는 매력있는 디자인과 높은 희소성 덕분에 꾸준히 많은 애호가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소원했던 애스턴 마틴과 자가토는 1980년대 중반 이후로 협력관계를 되살려 지금까지 개성 있는 디자인과 높은 희소성을 지닌 특별 모델을 꾸준히 내놓았다. 이 중 상징적 의미가 가장 큰 것을 꼽자면 단연 ‘DB4 GT 자가토 컨티뉴에이션(Continuation)’을 들 수 있다. DB4 GT 자가토 컨티뉴에이션은 두 회사의 인연이 시작된 DB4 GT 자가토를 과거 모습 그대로 재현해 새로 생산하는 모델이다.

애스턴 마틴은 2017년부터 DB4 GT를 시작으로 여러 컨티뉴에이션 모델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두 번째로 기획한 DB4 GT 자가토는 11월부터 구매자에게 인도되기 시작했다. DB4 GT 자가토는 원래 이탈리아 자가토 공장에서 차체를 만들었지만, 컨티뉴에이션 모델은 모두 영국에 있는 애스턴 마틴 워크스에서 생산된다. 제작방식은 오리지널 모델과 거의 같다. 차체 무게를 줄이기 위해 파이프를 입체적으로 용접한 섀시와 알루미늄 합금 재질의 차체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전문 장인이 수제작하고, 실린더마다 점화 플러그가 두 개씩 쓰이는 직렬 6기통 3.7L 엔진도 되살렸다. 오리지널 모델의 상징적 의미를 담아 생산량도 단 19대로 한정한다.

DB4 GT 자가토 컨티뉴에이션이 두 회사의 인연이 시작된 모델로서 의미가 있다면, 애스턴 마틴이 올 10월에 완성된 모습을 공개한 ‘DBS GT 자가토’는 과거에 대한 경의와 미래로 이어질 관계를 상징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애스턴 마틴을 대표하는 모델인 DBS 슈퍼레제라를 바탕으로 만든 DBS GT 자가토는 DB4 GT 자가토와 마찬가지로 애스턴 마틴의 뛰어난 성능과 자가토의 개성 있는 디자인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DBS GT 자가토는 자가토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디자인 요소를 곳곳에 담았다. 차체에 칠한 ‘센티너리 스페시피케이션’ 모델 전용 슈퍼노바 레드 페인트, 자가토의 상징인 Z자 로고를 재봉한 가죽 좌석과 앞바퀴와 도어 사이에 단 Z 엠블럼이 대표적이다.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라디에이터 그릴과 독특한 테일램프, 뒤로 갈수록 위로 치솟는 옆 유리와 근육질 느낌으로 불거진 뒷바퀴 주변 등은 DB4 GT 자가토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들이다.
자가토는 최신 모델인 DBS 슈퍼레제라를 바탕으로 DB4 GT 자가토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반영했다.
자가토는 최신 모델인 DBS 슈퍼레제라를 바탕으로 DB4 GT 자가토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반영했다.

럭셔리 카의 특별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첨단 기술을 사용한 것도 돋보인다. 자동차 업계 최초로 탄소섬유 재질과 3D 프린터로 만든 금속 재질로 실내 주요 부분을 맞춤 제작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아름다우면서도 특별한 디자인은 럭셔리 카의 가치를 높이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60년 전에 이루어진 애스턴 마틴과 자가토의 만남은 특별한 차를 예술품의 경지에 오르게 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은 물론, 지금도 ‘미래의 클래식 카’ 반열에 오를 차를 만들며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스타일매거진q#젠틀맨 드라이버#애스턴 마틴#자가토#럭셔리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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