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G7 정상회담과 오페라 그리고 시네마 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일 13시 59분


카타니아 마시모 벨리니 극장. 유혁준 씨 제공
카타니아 마시모 벨리니 극장. 유혁준 씨 제공

비잔틴 제국이 지중해를 지배할 때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중심은 타오르미나였다. 지난달 26일 괴테가 ‘작은 천국의 땅’이라 명명한 이 고대도시 원형극장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축하콘서트.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연주를 마치자 지휘자 정명훈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에게 우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인류에 대한 사랑입니다. 바다같이 깊은….” 7개국 정상이 자리한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원전 395년에 세워진 야외극장에서 바라보는 지중해처럼 깊은 사랑을 요구한 정명훈은 시칠리아 비치니가 배경인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을 들려줬다.
오페라 ‘베르테르’. 유혁준 씨 제공
오페라 ‘베르테르’. 유혁준 씨 제공

시칠리아에는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주도(州都) 팔레르모의 마시모 극장에서는 26일 정상회담에 맞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원작인 마스네의 ‘베르테르’가 뉴프로덕션으로 막을 올렸다. 마시모 극장은 1897년 개관 당시 파리 오페라, 빈 국립오페라에 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오페라하우스였다. 영화 ‘대부’ 엔딩신을 찍었던, 레드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가면 웅장한 인테리어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오메르 메이어 웰버의 지휘봉이 허공을 가르자 전주곡이 그윽한 울림으로 드넓은 극장 안을 감쌌다. 순간 무대막이 정사각형으로 열리며 ‘카사블랑카’ 포스터가 붙은 영화관이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알프레도가 토토와 같이 우정을 키웠던 영사실이 떠올랐다. 무대는 사이즈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스크린을 재현하고 있었다. 청중을 오페라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느낌, 3막에서 테너 프란체스코 멜리가 부른 ‘봄의 숨결이여, 왜 나를 깨우는가?’는 아득한 파스텔 톤 비극으로 치달았다.
오페라 ‘살로메’. 유혁준 씨 제공
오페라 ‘살로메’. 유혁준 씨 제공

‘카타니아의 백조’로 불리는, 과거 시칠리아 왕국의 수도 카타니아가 낳은 벨칸토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벨리니. 25일 그의 이름을 딴 마시모 벨리니 극장은 비행접시 혹은 솥뚜껑을 겹으로 엎어놓은 듯 미니멀리즘적인 무대가 압권이었다. 세계적 거장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연출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는 2시간이 순식간에 끝났다. 유명한 ‘7개 베일의 춤’은 남성 무용수들이 함께한 안무가 대단히 독창적이었다.
시칠리아 팔라초 아드리아노 움베르토. 유혁준 씨 제공
시칠리아 팔라초 아드리아노 움베르토. 유혁준 씨 제공

지난달 27일 영화 ‘시네마천국’을 찍었던, 산꼭대기에 자리한 인구 2000명의 소읍 팔라초 아드리아노의 움베르토 1세 광장을 찾았다. 촬영 후 30년이 지났건만 분수대의 사자 입은 물을 뿜고 있었고 영화관이 자리했던 교회도 그대로다. 시 청사 1층에 마련된 영화박물관에는 알프레도와 토토가 함께 탔던 자전거가 이방인을 반겨준다. G7 정상회담으로 주목받게 된 시칠리아는 그러나 오페라와 영화의 섬이었다. ‘현재를 즐겨라, 내일은 최소한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는 시칠리아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5일 동안 만난 시칠리아인들은 하나같이 삶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시칠리아=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 클라라하우스 대표 poetandlov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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