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꽃보다 붉은 울음/김성리 지음/292쪽·1만4000원·알렙
지난 일주일 동안 382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소설가 존 버거는 시와 소설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설은 승리와 패배로 끝나는 모든 종류의 싸움에 관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모든 것이 결과가 드러나게 되는 끝을 향해 진행해 간다. 시는 그런 승리와 패배에는 관심이 없다. 시는 부상당한 이를 돌보면서, 또 승자의 환희와 두려움에 떠는 패자의 낮은 독백에 귀를 기울이면서 싸움터를 가로질러 간다. 시는 일종의 평화를 가져다준다.”(‘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에서)
소설이 어떤 서사의 전모라면, 시는 그 서사 속에 갇힌 ‘부상당한 이’의 독백이다. 시는 역설의 언어이기에 평화로의 도약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시에서 치유의 희망을 가늠하기도 한다. 저자 김성리 씨는 간호사로 일하다 뒤늦게 문학을 공부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품기 시작했다. 몸을 치유하는 의학과 마음을 치유하는 문학의 융합이었다. 치료가 진단을 통해 처방을 하고 의학 기술로 병을 낫게 하는 것이라면, 치유란 상처받은 내면을 돌보고 안아줌으로써 상실감과 절망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고통을 직면하고 마음을 드러내는 언어로서 시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는 이를 ‘치유시학’이라 명명했다.
시는 어떻게 마음을 치유하는가. 저자는 그 질문을 가지고 한센인들의 집단촌을 수차례 찾아갔다. 무심(無心)의 경계에서 그는 그저 외부인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외부인이라고 자조할 즈음, 한 할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의 이름은 세 개였다. 호적에는 이말란, 공공요금 청구서에는 이숙자, 첫사랑의 연인이었던 마쓰시타에게는 요시코로 불렸다. 저자는 그로부터 7개월간 매주 두 시간씩 한 이불 밑에 앉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가 구술하는 시를 받아 적었다. 아득한 고통의 세월에 대한 증언이었다.
이말란, 이숙자, 요시코. 어느 이름으로도 규정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삶은 11편의 시, 그리고 하나의 서사가 됐다. 그리고 거기서 치유의 확신을 얻은 저자의 열망이 더해져 책으로 남았다. 이 책의 제목은 서정주 시인의 ‘문둥이’라는 시에서 가져왔다. ‘문둥이는 서러워(…)/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할머니는 소천했지만, ‘꽃보다 붉은 울음’ 같았던 할머니의 삶이 여기 우리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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