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도시장터, 뒷얘기가 더 푸짐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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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장터 ‘마르쉐@’ 잡지 낸 이보은씨

도심형 농부 장터인 ‘마르쉐@’를 기획한 이보은 씨가 서울 광화문에서 장터에 참여하는 농부와 요리사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를 들고 웃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도심형 농부 장터인 ‘마르쉐@’를 기획한 이보은 씨가 서울 광화문에서 장터에 참여하는 농부와 요리사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를 들고 웃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밥을 먹는다는 것은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벼에 스치는 바람, 비와 햇살의 속삭임, 나비의 춤사위와 농부의 땀방울을 느낀다는 것.”

농부와 요리사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가 나왔다. 잡지 이름은 ‘마르쉐@’. 서울에서 열리는 도심형 장터인 ‘마르쉐@’를 기획한 이보은 씨(48)가 펴냈다. 이 장터에 참여하는 청년 농부나 농부 2세 등 소농(小農)들과 요리사들이 제철 채소를 먹는 법, 자연과 하나 되는 삶, 이야기가 있는 식탁을 소개한다. 이 씨를 최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씨가 마르쉐@를 고안한 건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하던 2000년대 중반 ‘슬로 라이프 운동’을 접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온전히 제 시간의 중심이 되어 고속 사회에서 삶의 속도를 어떻게 늦출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죠. 그때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1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공장 터에 도심 텃밭을 일구며 사람들과 작물을 기르고 함께 요리를 만들어 먹었어요.”

텃밭 농사를 통해 동료 농부들은 또 다른 가족이 됐다. 이 씨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2012년 10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마르쉐@를 열었다. 프랑스어로 시장을 뜻하는 마르쉐(마르셰)에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인 at(@)을 붙여 ‘마르쉐@혜화’라 했다.

처음엔 텃밭 지인 30여 명으로 시작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친구가 생산한 작물을 친구가 소비한다는 우산우소(友産友消)의 취지를 살렸다. 참여자가 친구이기에 장터는 물건만 오가는 시장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는 시장‘임을 분명히 했고, 그 원칙은 계속 지켜지고 있다. 판매자를 뽑을 때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놓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소비자가 납득할 때까지 묻고 답하면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요. 판매자도 소비자에게 어떤 요리와 농산물을 만들어야 할지 알게 되죠. 갖고 온 상품이 다 팔려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대화하는 게 불문율로 통해요.”

이 장터는 혜화동과 명동 등을 번갈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열린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접할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하루 7000∼8000명이 다녀가며 ‘한국형 파머스마켓’으로 자리매김했다. 농부는 적채, 래디시, 고수, 루콜라 등 시중에서 접하기 힘든 신선한 작물을 들고 나온다. 요리사들은 산야초 김밥, 현미 케이크, 수수 와플, 앉은뱅이밀 빵, 곰취 모히토 등 우리 식재료를 쓴 음식을 내놓는다. 친구나 연인, 가족들이 이들과 대화하고, 장터 인근에서 음식을 먹는다.

그러는 동안 농부는 요리사에게 재료 가공법을, 요리사는 농부에게 재료 본연의 맛 등을 배운다. 처음엔 취미로 음식을 팔다가 서울 홍대 거리와 경리단길 등에 식당을 창업한 경우도 적지 않다. 달키친(채식 버거), 지새우고(수제 곡물잼), 댄디핑크(꼬치) 등이 대표적이다. 요리사에게 어떤 작물이 필요한지 알게 된 농부들은 유명 레스토랑에 납품하기도 한다. 농부들은 판매 수익의 10%를 기부해 장터 운영금을 대고 있다.

이 씨는 “이번에 잡지를 펴낸 것은 장터 안에서만 유통되는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라고 강조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해지잖아요. 우리가 사는 환경과 어우러져 좋은 음식을 더 잘 먹을 수 있는 법을 함께 모색하고 싶어요. 잡지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장바구니를 챙겨 시장에 달려가거나 친구와 밥상에 둘러앉고 싶어진다면 좋겠어요.”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마르쉐@#이보은#슬로 라이프 운동#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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