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작가 27년만에 ‘군함도’ 완성
“日 과거사 왜곡 질타하기 앞서 소설-영화 통한 문화적 기억 힘써야”
“경멸과 차별 속에 버려졌던 조선인 나가사키 원폭 피폭자의 영혼에 책을 바칩니다.”
일제강점기 하시마(端島) 섬(별칭 군함도) 강제 징용과 나가사키 피폭 문제를 다룬 소설가 한수산 씨(70·사진)의 장편소설 ‘군함도’가 1, 2권으로 18일 출간됐다. 이날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한 씨는 “일본의 군함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피폭자의 후유증, 세계 곳곳의 전쟁과 살상 앞에서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소설로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씨가 이 문제에 천착한 것은 27년 전인 1989년 일본 도쿄의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발견했을 때부터다. 비극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감에 1990년 여름부터 취재를 시작해 강제 징용돼 군함도에서 혹사당하고 원폭 피해를 입은 서정우 씨와 함께 군함도를 답사하기도 했다.
한 씨는 “당시 서 씨는 ‘이 절벽에서 죽으려고 했다’ ‘가장 큰 고통은 린치도 노동도 아닌 배고픔이었다’ 등 참혹했던 시절을 소상히 들려줬다”며 “수년 뒤 헤어지면서 서 씨가 내가 탄 전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이 참상은 반드시 문학적 기억으로 남기겠다’고 마음속에 말뚝을 박았다”고 말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1993년부터 3년 동안 이 소재로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하다가 중단했고, 2003년 200자 원고지 5300장 분량의 장편 ‘까마귀’를 냈지만 역시 성에 차지 않았다. 이번에 출간된 ‘군함도’는 ‘까마귀’를 대폭 개작한 것이다. 국제 정세나 원자폭탄 제조 과정, 전시 일본의 상황 등을 서술한 부분 등 3300장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덜어냈다. 등장인물의 출신과 배경을 새로 설정하고 여성 캐릭터를 주체적으로 바꿨으며 서사를 보강하는 등 1500장을 새로 썼다. 한 씨는 “글을 잘라내는 고통이 컸지만 수면 아래 잠긴 얼음과 같은 ‘시대의 실체’로 독자를 이끌 수 있도록 과감히 쳐냈다”고 말했다.
한 씨는 “일제강점기의 여러 참상과 고난을 직면한 우리 소설, 영화가 몇 편이나 있는가”라며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질타하기 전에 우리부터 문화적으로 이를 형상화하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