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죄와 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준비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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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인가-존엄한 삶의 가능성을 묻다/오종우 지음/256쪽·1만4000원·어크로스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은 사실 읽는 데 진입장벽이 좀 있다. 고뇌에 빠졌거나 히스테릭한 등장인물의 말은, 공연으로 그대로 옮긴다면 중간에 극장을 나갔다가 밥을 먹고 들어와도 계속될 것처럼 길다. 러시아 이름은 낯설 뿐 아니라 헷갈린다. 한 사람에 대한 다른 호칭이 적어도 4개는 된다.

그럼 축약본을 읽어볼까? ‘죄와 벌’은 ‘가난한 대학생이 강도 살인을 벌인 뒤 뉘우치고 자수한다’는 식이다. 이보다 더 재미가 없을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은 정독해야 맛이 난다. 한 번도 정독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정독한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인간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때로 등장인물이 독자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처럼 친절하지 않다. 등장인물 자신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모를 때가 잦다. 독서에 적절한 안내자가 필요한 이유다.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로 ‘예술 수업’ 등을 내며 고전의 현재적 가치를 전해 온 저자의 이 책은 ‘죄와 벌’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다.

저자는 19세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살인자, 매춘부, 실직한 주정뱅이, 물질만능주의자, 이념에 휩쓸린 자 등이 빚어내는 이 성화(聖畵)의 장면들에서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성찰해야만 하는 것을 끄집어내 설파한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 대접을 해주지 말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삶은 손익계산서인가, 존엄과 자유는 어떻게 지킬 수 있나. 대학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인데, 복잡한 비평 이론은 한 줄도 안 나온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무엇이 인간인가#오종우#도스토옙스키#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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