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석의 시간여행]지진 속보와 상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간토대지진 이후 불길에 휩싸인 도쿄 시가의 항공 사진. 동아일보 1923년 9월 8일자
간토대지진 이후 불길에 휩싸인 도쿄 시가의 항공 사진. 동아일보 1923년 9월 8일자
‘동부 이탈리아에 일어난 지진은 길이 300리 폭 150리에 이르는 다수의 도시와 촌락을 파괴했고 사망자 1천5백 명, 부상자 1만여 명….’

동아일보 등 민간신문이 첫선을 보인 지 반년이 지난 1920년의 초가을, 독자들은 해외의 지진에 관한 모처럼의 생생한 소식을 접했다. 한국인에게 지진은 생소한 경험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전날보다 더욱 격렬한 지진이 일어났고, 화산 분화구가 열렸으며, 분출한 먼지가 천지를 뒤덮어 햇빛이 차단되었다. 마침내 세상의 말로가 도래하는 듯하다고 생존자들은 말했다.’(동아일보 1920년 9월 11∼14일자)

9월 7일과 8일 연속으로 발생한 유럽 땅의 강진은 이 같은 요지로 네댓새 뒤 극동의 조선에까지 ‘신속히’ 전해졌다. 가본 사람이 거의 없는 지구 반대편의 머나먼 세계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이었다. 당시 신문물은 세계를 ‘일주일 정보권’으로 좁혀놓고 있었다.

이탈리아 대지진은 그 진동이 일본 오사카에서도 지진계로 감지되었다. ‘이탈리아는 본래 세계의 화산국 중에 유명한 나라로 약 2천 년 전부터 서부 해안의 화산 폭발로 폼페이라는 큰 도시가 아주 파묻힌 일도 있음’을 신문은 상기했다.

거의 동시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8일 오전 격렬한 지진이 있었음이 전해졌다. 1906년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이래 처음 보는 규모라 했다. 4월에 샌프란시스코 지진이 일어나기에 앞서 그해 1월에는 아래쪽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의 지각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지금 말하는 환태평양 불의 고리의 한 축이었다.

과거 같았으면 한국인의 처지에서 모르고 지나갈 일들이었다. 안다고 해도 지진이 있었다는 사실 이상의 구체적인 정보는 제시되지 않았었다. 국내의 크고 작은 지진 소식들이 조선왕조실록에는 ‘지진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기록되다가 독립신문 이래 구한말의 초기 신문들에서 어느 정도 초보적인 내막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저께 밤 여덟 시에 땅이 흔들려 집이 움직이고 문짝이 흔들려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래어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혹 누가 밖에 와서 문을 흔들고 부르는 줄로 알고 헛 대답한 사람도 있다 하고, 혹 어디서 대포를 놓는가 의심하여 매우 놀란 사람들도 많았었다 하더니, 어제 오후 두 시 반에 또 땅이 흔들렸다.’(독립신문 1898년 12월 28일자)

스무 날 뒤 독립신문은 재차 국내에 지진이 발생하였음을 알렸다.

1920년의 이탈리아 지진 소식 이후 1921년부터 일본의 크고 작은 지진 보도가 신문에 잦아졌다.

‘12월 8일 밤 9시 30분부터 도쿄 지방은 약 30분 동안 근년에 처음 보는 큰 지진이 있어서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문밖으로 뛰어나오고 한때 매우 소란했다. 강렬한 지진이 일어날 때에는 집이 진동하고 방안의 전등이 어지러히 흔들리고 시계는 추가 정지되고 연극장과 활동사진관 등 사람 많이 모인 곳에는 일대 혼잡을 이루어….’(동아일보 1921년 12월 10일자)

그러다 1923년이 되었다. 24시간마다 평균 3차례꼴로 지진이 발생한다는 일본이어서 웬만한 지진은 바다 건너 경성의 신문에 일일이 보도되지 않았다. 그리고 9월 1일. 미증유의 지진이 일본 중심을 뒤흔들었다. 간토대지진이었다. 각급 학교의 새 학기 시작일을 맞아 일어난 이 지각변동은 엄청난 사태를 몰고 왔다. 신문에 다 담아내기 벅찬 내용이었다. 그것은 일본의 일이면서 조선의 일이 되었다. 비로소 한국인들은 일본의 지진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93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천재(天災)의 멍에를 운명처럼 이고 난관을 극복 중이다. 2011년 봄의 동북 대지진 이후 5년 만의 봄에 맞는 서남 대지진. 그 불의 고리의 한 지점을 바다 건너 바라보며 한국은 한국대로 인재(人災)의 연쇄 고리 속에 오늘도 관성적으로 나아간다. 지구 껍데기상에서 펼쳐지는 두 나라의 양상과 색채는 사뭇 다르다고 할까.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
#지진#속보#상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