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관계의 파국을 부르는 ‘不信’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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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나쓰메 소세키 지음·송태욱 옮김/436쪽·1만5000원·현암사

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지난 일주일 동안 550여 편의 독자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다. 믿음이 수반되지 않은 관계는 사랑도 지옥으로 만들어버리고, 뒤따라오는 의심이 사람을 지옥의 밑바닥까지 끌어내린다. ‘행인’을 읽으며, 의심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무엇보다 나 역시 의심하는 자였고 믿을 수 없는 자였기 때문에 “죽거나 미치거나 종교에 입문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만드는 지옥을 걸었다.

‘행인’에서 의심하는 자는 형 이치로다. 서사의 주축은 형 이치로와 동생 지로, 형의 아내 나오 세 사람의 ‘불편한’ 관계다. 지로에게 나오의 마음을 떠보라며 단둘이 와카야마로 떠나 하룻밤 묵어오길 종용하는 이치로의 모습은, 그의 의심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이치로는 자신이 잘못 추측했음을 확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사실이어서 의심을 끝내고 싶다는 소망에 시종일관 허덕인다. 그런 형의 태도가 지로의 마음에도 불편한 걸림돌이 된다.

사랑을 하면서 타인의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느껴보았을 터이다. 그 욕망이 의심을 낳게 된다. 이치로의 마음에 생긴 ‘의심암귀(疑心暗鬼)’는 외지로 떠난 지로와 나오가 악천후로 하루를 지체해 돌아오게 되자 그 몸집을 부풀려 단단한 확신으로 자리 잡는다. 이치로는 지로의 해명을 듣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고통과 광기에 휩싸인 그는 가족에게 불안정한 태도를 보이고, 끝내 나오에게 폭력을 가하기에 이른다.

이치로를 보면서 입으로만 애정을 맹세한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왕’이 떠올랐다. 이 비극의 끝에는 모든 이가 목숨을 잃는다. ‘돈키호테’의 안젤모는 어떠한가. 무모한 호기심으로 아내와 친구 모두를 잃는다. 이치로 역시 부인뿐 아니라 가족 모두를 의심하며,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으로 생활하게 된다. 세 소설의 키워드인 ‘의심’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모든 부분을 공유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사랑을 하면 타인과 나 사이의 겹쳐진 부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닿지 않은 여백이 항상 궁금하다. 그 공간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사랑을 대신할 오직 한 가지, 믿음이다.

김회순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행인#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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