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도 그림도 결국은 나를 찾기 위한 노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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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묵화展 여는 범주 스님

출가 50년 동안 선묵화를 통해 수행해 온 범주 스님.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출가 50년 동안 선묵화를 통해 수행해 온 범주 스님.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의 부인들이 부산 범어사를 방문했을 때 특별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가로 5m, 세로 6m 종이 위에 큰 붓을 잡은 한 스님이 단숨에 달마도를 그렸다. 이어 스님이 손에 먹물을 묻혀 낙관을 꾹 찍자, 주변에서는 탄성의 박수가 나왔다.

‘달마도의 대가’로 알려진 범주 스님(72)이다. 참선(參禪)과 선묵화(禪墨畵)를 하나의 경지로 보는 ‘선묵일여(禪墨一如)’의 세계를 추구해온 스님이 29일∼9월 8일 서울 우정국로 조계사 나무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개최한다.

최근 간담회를 가진 범주 스님은 “1년 전 옻과 화공약품을 다루다 병이 생겨 생사의 경계를 헤맸다”며 “마지막 전시회 아닌가 생각하면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지난해 여름 입원 당시 수술도 어려운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기력을 회복했고, 지난달 29일에는 종양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마지막이라는 표현과 달리 스님의 말과 얼굴에는 기운이 넘쳤다.

범주 스님의 달마도 그림. 그림 옆의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은 달마대사의 가르침으로 ‘마음을 보는 법이 모든 수행을 아우른다’는 뜻이다.
범주 스님의 달마도 그림. 그림 옆의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은 달마대사의 가르침으로 ‘마음을 보는 법이 모든 수행을 아우른다’는 뜻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투병 중에도 꾸준히 작업한 300여 점이 출품됐다. 달마도와 포대화상, 산수만행도 등 선 수행의 경지를 담은 선묵화들이다. 전시회 수익금은 선원 수좌들의 복지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된다.

선묵화를 그리는 출가자는 적지 않지만 스님의 작품들은 다른 경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출가에 앞서 홍익대 미대에서 제대로 미술 수업을 받았다. 이후 4학년이던 1966년 당대의 선승 전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림을 선택한 것도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못 찾았죠. 그래서 결국 출가를 결심했고 벌써 5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스님은 그 시간 동안 전시회 33회, 선 퍼포먼스 30회 등 예술의 길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스님이 기억하는 은사는 무엇보다 참선 공부에 철저했다. “참선 공부 때는 너무 엄해 다른 것은 일절 할 수 없었죠. 근 10년간 붓은 잡을 수 없었고 불교 공부만 열심히 했죠. 하하.”

수행의 방편으로 다시 선묵화를 시작한 스님은 미국에 건너가 현지 포교에 앞장섰던 숭산 스님을 도와 로스앤젤레스 달마사 주지를 5년간 맡았다. 뉴욕에서도 선묵화 전시회와 교육을 통해 포교활동을 펼쳤다.

스님은 건강이 나빠지자 “혹시나” 해서 ‘나를 찾아 붓길을 따라서’(운주사)라는 회고록도 최근 출간했다. 출가와 이후 삶의 여정, 선에 바탕을 둔 선묵화의 세계를 담았다. 서울을 시작으로 울산과 부산, 대구,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도 전시회가 이어진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선묵화#범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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