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방귀희]4월 어느 날 고독사한 장애인 화가를 기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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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최근 시력을 거의 잃은 미국의 젊은 화가 제프 핸슨이 그만의 독특하고 화사한 색상과 깊은 질감에 애호가가 늘고 있다는 TV 방송을 보았다. 핸슨은 캔버스에 끈적거리는 물질을 바른 후 손으로 만져가며 색을 칠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시각장애 화가가 그린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핸슨은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워런 버핏, 엘턴 존, 수전 서랜던 등 유명인들이 그의 작품을 구매하면서 핸슨은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었다는,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 소식에 최영자라는 구필화가가 생각났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근육병 장애인 시설인 잔디네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잔디네에 오기 전에 남편, 아들 둘과 함께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그녀는 사업가로도 성공한 슈퍼우먼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행복을 빼앗아 간 것은 바로 그녀의 몸 근육을 무력화하는 근육병이었다.

단지 장애가 생겼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시설에 오게 된 것이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무렵 자신의 마음을 거르고 걸러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단편소설로도 썼다. 그 소설에선 남편이 자기를 찾아오는데 그 이유가 이혼 절차를 밟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법원에 가는 날 남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곱게 화장을 하며 짧은 행복에 잠시 빠져 본다는 스토리다. 그런데 그 소설은 실화였다.

최영자 씨는 이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그녀는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지하 월세방에서 혼자 살며 시간제로 활동보조인의 돌봄을 받고 있었는데 며칠 후 활동보조인이 와보니 싸늘한 주검 상태였다고 한다. 혼자 외롭게 한 많은 인생을 접은 것이다.

4월 장애인의 달,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라고 장애인 당사자들은 권리를 주장하고 정부는 장애인 복지를 약속하지만 지금 어디에선가 독거 장애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2015년 한국 장애인의 현실이다.

최 씨의 방 안 가득 그녀가 그린 그림이 있었다. 최 씨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였다. 그녀가 그린 장미꽃은 어찌나 곱던지 당장 손을 뻗어 꺾고 싶을 만큼 탐스러운 생명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그림을 사주지 않았다. 그녀를 화가로 인정해주고 그녀의 작품을 구매해주는 사람만 있었어도 그녀는 고독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핸슨의 그림은 주문이 6개월이나 밀려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왜 우리나라 장애인 화가들은 가난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인지, 이 슬픈 차이의 원인은 무엇인지 우리 모두 반성이 필요한 4월이다.

나는 아직도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를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나는 고 최영자 씨가 시인으로서 정말 치열하게 글을 썼고, 화가로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그 누구보다 행복했으며, 그녀의 창작활동은 예술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대한민국 언론 지면을 통해 기록해 둔다.

이제는 성장한 아들들이 우리 엄마는 훌륭한 예술가였다고 자랑스러워해 준다면 하늘나라에서나마 소망이 이뤄졌다며 편안히 눈감을 수 있을 것이다.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장애인 화가#고독사#제프 핸슨#시각장애 화가#최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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